PART 2. 동행자 이야기 1 - 하준이 엄마 이야기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결과를 이야기했다. 남편은 흥분한 말투로,
“장……애? 말 같지 않은 소리! 누가 그래? 병원에서 그래? 말이 조금 느리다고 다 장애야? 나도 어릴 때 말이 느렸는데 지금 잘하고 있잖아! 돌팔이야! 그냥 자기들 돈 벌려고 대충 하고 치운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키워!”
라며 강하게 외쳤다.
나도 남편 말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하준이의 지난 행동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장애가 맞다. 아무리 철없는 남편이라도 그 정도 감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외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그저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하준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렵게 흘렀다. 남편의 야근은 잦아지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적어졌다. 외면하고 싶어서 야근하는 것인지, 일이 좋아서 야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혼자만 하는 육아의 삶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해내야지. 엄마니깐……
아이가 치료실을 다니고 있다. 치료 선생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놀이 치료, 언어치료, 심리 행동 치료, 미술치료, ABA, DTT, PECS 등 해보지 않은 치료가 없다. 아무리 꿈e든 카드와 바우처 지원을 해줘도 치료비는 늘 부족하다. 결국, 외벌이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참 어렵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는 늘 죄송하다고 하며 조퇴를 해야 한다. 남편은 지금도 하준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니 주변 시선과 홀로 싸워야 한다. 남편에게 부탁하기도 어렵고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11km짜리의 인제-양양 터널에 들어가도 달리다 보면 결국 빛이 보이던데, 나도 언젠가는 터널 밖의 빛이 보이겠지?’
매일 나는 그 빛을 위해 열심히 교육한다. 그런데 하준이의 문제 행동이 심하게 나타날 때마다 ‘내가 한 행동이 아이를 더 망가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자책을 한다. 전문가들은 ‘어머니, 육아에 정답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요즘 들어 이게 ‘어머니들의 모든 노력이 다 맞아요’라는 지지의 의미라기보다 정말 ‘어머니, 육아에 정답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모든 선택을 후회하거나 주저하게 한다. 또 혹시 ‘내가 일을 하니깐 하준이가 더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린 안다.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크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듯이 지금은 내가 불행을 더 민감하게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지금까지 겪어온 하준이의 작은 성공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나는 이 행복을 계속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고백한다. 그동안 난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사랑하는데 부끄러울 수 있는가? 부끄럽다면 사랑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함께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끄러움’과 ‘사랑’을 저울질하며 매일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장애 아이가 왜 나에게 왔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이런 생각이 항상 나를 좀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장애가 잘못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장애는 수많은 사람이 가진 특성의 한 가지일 뿐이다. ‘장애인’에서 ‘장애’를 빼면 그냥 ‘사람’이다. 잘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뼈가 튼튼한 사람 모두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런 한 가지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생각이 그렇게 다다르고 나니 이제야 보인다. 내가 특성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장애도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러면 ‘장애 아이를 낳는 그 대상이 내가 아닐 이유가 있겠는가?’ 그리고 생각한다. 이 아이가 다른 엄마가 아닌 나에게 찾아왔다는 게 참 다행이다. 사랑받고 클 수 있어서……
‘하준아! 드디어 내가 너의 진짜 엄마가 된 것 같다!’
어머! 그런데 어떡하죠? 둘째를 임신했네요?
저…… 잘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