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학생과 치열한 3월을 보내고서야 서서히 자리가 잡혔다.
'이제 1년간 이 패턴대로 해나가면 돼! 좋아!'
'띠리리~띠리리'
"교무기획부장님 전화네? 네 특수교사 감탄입니다."
"감선생. 전학생 왔으니깐 교감실로 가봐요."
"네? 갑자기요? 원래 우리 아이들은 사전에 안내해 주는데?... 아! 지금 갈게요 부장님~"
특수교육대상학생은 보통 전학 전에 전학 갈 학교 특수학급의 티오와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특성과 지원할 부분 등을 안내하기 위하여 미리 소통을 한다.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경우는 그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을 만큼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학폭일까? 성문제? 가정불화?'
고작 1분 거리를 가는 동안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했다.
교감실에 갔다.
그곳엔 볼살이 가득한 아이가 뾰족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옆에는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애매한 보호자가 계셨는데 대화를 해보니 아버지셨다.
"안녕~ 반가워~"
"......"
아버지가 대답 없이 땅만 보고 있던 아이에게 핀잔을 주시니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였다.
"... 안녕하세요."
그렇게 부모 상담과 전학 절차를 마치고 아이와 교실로 향했다.
걸음걸이를 보니 '첨족'이었다.
'아~이 장애가 있는 거구나...'
30분가량 상담을 했다.
단 둘이 있으면 대답을 안 할 수 없다 보니 상담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아이를 알게 되었다.
지적능력이 평균 수준인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가족관계에 대해서 가볍게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복잡했다.
뭔가 원하지 않은데 온듯한 느낌이었다.
"그만 말하고 싶어요."
"그래, 지연아~ 나머진 지연이가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을 때 말해도 돼."
"... 고맙습니다."
3명의 아이들에게 전학생을 소개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지적장애 1급을 가진 아이는 계속 전학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고 있었다.
"유진이! 그만! 앞에 봐!"
지적장애 2급을 가진 아이는 수줍어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연경이도 선생님 봐~"
나머지 아이도 히죽히죽하며 전학생을 보고 있었다.
전학 온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관찰에 기분이 상해서 혼잣말을 했다.
"짜증 나. 왜 자꾸 웃어."
"자~ 새로운 친구를 자꾸 쳐다보면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모두 선생님을 보세요."
쉬는 시간이 되었다.
"언니들이 쳐다봐서 기분이 상했지?"
"조금요..."
"지연이가 전학을 와보니 모든 게 새롭잖아? 아까 그 언니들도 지연이처럼 새로운 것에 예민한데 지연이가 와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본 것 같아."
"웃었는데 뭐가 반가워요!"
"그건... 공감능력의 문제인데... 언니들은 자신의 행동이 지연이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야. 선생님이 보기엔 지연이가 좋아서 그런 것처럼 보였어. 그 부분은 지연이가 이해를 해주면 좋겠어."
"그래도 싫어요. 이해도 안 되고! 기분 나빠요!"
"그럼 어떻게 하지? 이 언니들이 이 교실 주인이었는데?"
"......"
"지연이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몰라. 선생님이 너의 지난 시간들을 다 받아주지도 않을 거고. 힘들겠지만 지금 분위기에 적응해야 해."
"......"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제가 할 수 있는 거면요."
"언니들이 교실에 오면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줄 수 있어?"
"귀찮게 그걸... 제가 왜 해요?..."
"지연이가 인사를 해주면 언니들은 하루 종일 행복해할 것 같아. 그냥 언니들이라 생각하지 말고 초등학교의 귀여운 동생들이라고 생각하고 해 보면 어때?"
"그럼 제가 얻는 건 뭐가 있어요?"
"선생님이 너 많이 웃게 해 줄게."
"......"
"고개 끄덕인 거 맞지? 좋아~"
그날부터 지연이는 언니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지연이의 인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기까지 했다.
언니들의 귀여운 모습에 지연이도 마음이 열리고 조금씩 대화를 해나갔다.
나 또한 지연이의 웃는 얼굴을 위해 시답지 않은 농담을 끊임없이 했다.
언니들이 지연이를 의지하게 되니 특수학급이 지연이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
지연이가 특수학급에서 많이 밝아지면서 점점 통합학급에서도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지연이가 말을 던졌다.
"저 쫓겨났어요. 집에서요."
"그랬구나?"
"엄마는 어릴 적에 집을 나갔어요. 아빠는 재혼을 해서 새엄마 집에 살았는데 제가 새엄마의 딸들과 자꾸 싸우다 보니 아빠가 절 여기로 보냈어요."
"아~ 그렇게 오게 된 거구나? 근데 할머니가... 아빠를 일찍 낳으셨나?"
"외할머니세요. 아빠랑 엄마랑 나이 차이가 많아요."
"그랬구나~ 그래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덕분에 우리가 만난 거네? 고맙네~"
"...... 그럴지도...... 근데 제가 잘했으면 됐는데 제가 잘못하니깐 이렇게 됐어요. 저도 억울해요. 근데 결국 저만 이렇게 쫓겨났어요."
마음이 아팠다.
가끔 우리 아이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이야기들이 따라온다.
이번에도 큰 이야기지만 아이에게는 가볍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연아 너의 지난 시간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지? 지난 시간은 곱씹어봤자 상황을 바꾸거나 시간을 돌이킬 방법이 없어. 그러니 그냥 일어난 일로 둔다고 생각해 봐. '좋다, 나쁘다' 할 것 없이 그냥 '그랬구나~'하고 인정하는 거지. 중요한 건 너의 내일은 지금 이 순간부터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야. 오늘이 내일의 과거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
"선생님... 좋은 말인듯한데 무슨 말인지 헷갈려요 적어주세요..."
"아.... 내가 뭐라고 했는지 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따 쉬는 시간에 적어줄 테니깐 받으러와"
"선생님... 그럼 저도 스무 살 되면 괜찮을까요?"
"당연하지! 앞으로 스무 살까지 6년 남았고, 72개월 남았고, 2160일이 남았다. 네가 열심히 살 오늘이 2160번이나 있는 건데 뭔 걱정을 해! 내가 너 졸업할 때까진 꼭 이 학교에 있을 테니 걱정 마!"
"네, 한 번 믿어볼게요 선생님~"
싹이 틔이기 전까진 희망을 의심하는 과정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 의심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아이는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나에게 교육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 해주는 행위이다.
그렇게 오늘도 한 아이가 싹을 틔웠다.
이 싹이 얼마나 자랄지, 어떻게 자랄지 나는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싹이 났고 자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여중에 배정되었어야만 하는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