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배려 역시 삶에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 김호. 위즈덤하우스
"센센니이~ 안녀 하셰여~"
작은 문틈 사이로 그보다 작은 인사가 새어 들어온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이의 말투다.
그 아이는 중학교 2학년 특수교육대상학생 연경이었다.
'애교가 많다고 하더니 말투부터 그러네?'
"그래 연경아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센센니~ 운이 안여려요"
"문을 옆으로 밀어봐."
"잉? 이~얏~ 잉? 응? 응?"
나는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30초가량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이는 당황하며 힘을 주는 시늉만 계속하고 있다.
그 사이에도 나를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음...... 관심이 필요한 거구나?'
"선생님이 열어줄까?"
"... 에..."
연경이는 지적장애 2급을 가진 아이이다.
연세가 많고 지병이 있으신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학교와의 거리가 멀고 아버지가 데려다줄 수 없는 환경이다.
이 문제 때문에 아버님과 통화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특수교사 감탄입니다."
"에!"
"연경이 등하교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말해요!"
"혹시 아버님이 등하교를 시키실 수는 없는 환경인가요?"
"내가 병 때문에 걷지를 못해서 안 돼요."
"그럼...연경이 활동보조를 신청해서 등하교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여자가 운전하면 위험해서 안 돼요."
"아... 그럼 남자활동보조를 알아볼까요?"
"여자 아이라서 남자는 더 안 돼요."
"아... 그러시군요... "
"난 연경이가 학교 안 가도 되니깐 이제 그만 말해요."
그랬다.
아버님은 아이가 학교에 가든지 말든지 상관없었다.
그래서 결국 전임 선생님이 해오시듯 내가 아침마다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해 준다.
'화요일 아침엔 수요일, 목요일 등하교 예약'
'목요일 아침엔 금요일 등하교 예약'
'토요일 아침엔 월요일, 화요일 예약'
예약도 경쟁이라 연경이의 등하교는 나의 부지런함에 달려있었다.
다해줘야 하는 열악한 환경......
아이가 반드시 '자립'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지금 애기처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마냥 애기처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보다는 나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은 지적장애 2급보다 훨씬 낮아 보인다.
성인이 되려면 5년,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년...
'시간이 없잖아.'
특수학급의 수업이 끝나면 또래도우미가 연경이를 데리러 온다.
거의 모시러 오는 수준이다.
수업을 조금도 늦게 끝내기 어려울 만큼 칼같이 기다리고 있다.
걱정했던 것보다 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통합이 잘되는 게 나의 능력은 아닌 것 같고... 여자중학교라서 그런가? 왜지?'
이 귀하디 귀한 학생들과 또래도우미들 덕분에 통합의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경이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져갔다.
그런데 연경이는 또래도우미 친구들과 만나면 도로 아이 말투로 변한다.
아무래도 원인이 학생들의 반응에 있다고 보였다.
점심시간마다 또래도우미들을 특수학급에 초대해서 놀 수 있게 했다.
보드게임도 꺼내놓고, 아이돌 음악도 틀고, 과자도 준비했다.
그렇게 며칠을 관찰했다.
연경이가 무엇이 필요하면 말없이 대충 구부린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켰다.
그러면 또래도우미들이 눈치 빠르게 알아차리고는 그 물건을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낑낑 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려서 그곳을 보면 연경이 주변에서 또래도우미들이 연경이를 다독이는 모습이 보인다.
난 '연경이의 언어적 퇴행이 언어의 경제성과 관심획득의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평소에 관심을 양껏 주되, 아이의 말투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경우엔 무시하기'라는 교육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또래도우미와 통합학급 담임선생님에게 이러한 상황과 앞으로의 행동지침을 전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관된 교육방법에 연경이는 결국 화가 터지고 말았다.
"선생님이 그러니깐!! 내가 그런 거잖아요!! "
너무나 명료하고 큰 목소리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인데 드디어 봉인해제가 되었다.
이 소식을 담임선생님과 또래도우미에게 알려야만 했다.
점심시간에 연경이가 특수학급에 있을 때 담임선생님과 티타임을 하는척하며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우리 연경이가 이제 말을 잘하게 됐어요. 말을 또박또박하고 큰소리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용감해지고 당당해지고 멋져졌어요. 2학년이라서 그런지 동생들에게 멋진 언니가 되려고 그런가 봐요! 다음에도 또박또박,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칭찬 많이 해주세요!! 연경이 멋졌어!!"
연경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이후 연경이는 이전의 아기 말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의 벽'을 뚫고 나온 후부터 연경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3학년 1학기 중간쯤 되었을까? 연경이 아버님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몸이 많이 아프네요. 연경이 활동보조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버님의 병이 심해지시면서 이제 보호자의 역할을 나누시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절차를 알려드리고 서류 작성을 도와드리고 나서 활동보조원이 배정되었다.
활동보조원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
그분에게 연경이의 성장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방향을 안내했다.
다행히도 공감하셨고 완벽하게 실천을 해주셨다.
아버님이라는 햇살이 있을 때 커야만 하기에 내 마음은 바빠졌다.
연경이가 진학할 고등학교 특수 선생님에게도 과할 만큼 상세히 전했다.
과거-현재-미래의 로드맵을 그리듯,
아빠가 딸을 시집보낼 때 사위에게 당부하듯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듬해에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하지만 연경이는 활동보조원과 선생님의 노력을 거름 삼아 그 이상 성장 중이다.
연경이의 아빠가 희망을 위해 큰 결심을 하셨다는 걸 아는 듯 연경이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