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애 낳고 나면 진짜 더 깊은 교사가 되실 거예요. 다들 그러더라고요.”
복도에서 동료 선생님이 말하길래,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이 키우면 더 이해도 되고, 더 단단해지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삼키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장애 학생의 부모보다 아이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애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사례를 봤고,
그래서 더 정확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어떤 면담에선 단호하게 말했고,
어떤 요구에 대해선 선을 그었으며,
내 생각이 맞다고 판단하면,
부모님을 설득하려 했다.
그때는 그게 교사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역할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리고 내 생각의 근본을 흔들게 했다.
이전엔 장애는 ‘특별한 경우’에 생기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수많은 세포와 기관, 구조와 기능이
전부 제자리를 지켜준다는 것.
그게 더 기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아이가 특별한 걱정 없이 태어났다는 건
기능적으로 운이 좋은 일이지,
내가 뭘 잘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제야,
내가 만났던 수많은 부모들이 겪은 일들이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이 조금 더 어려워졌다.
“선생님, 이건 꼭 해주셨으면 해서요.”
어떤 어머니가 조심스레 요청했을 때,
예전이라면 상황을 분석하고
'지원 가능 여부’를 근거로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머니의 마음부터 떠올라
말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정책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일 때,
학급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일때가 많았기에
나는 점점 더 자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됐다.
통합 수업에서 충돌이 생겨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때면,
전화기를 몇 번이고 쳐다보다가
숨을 한 번 더 크게 들이쉰다.
예전엔 없던 일이다.
어떤 날은 내 마음 안에서 충돌이 생긴다.
'공감은 되는데, 현실은 어렵다.'
'이해는 되는데, 해줄 수 있는게 적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나는 특수교사니까’라고 쉽게 정리했을 텐데,
이제는 그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를 낳고 나면
더 깊어졌다고, 더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오히려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옷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가 흔들릴수록,
더 잘 해내야겠다는 압박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내 마음 한 켠엔 계속 남는다.
‘이 일이 정말 내 일일까?’
예전엔,
이 일이 마냥 좋았다.
내 적성에도 잘 맞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의미 있고 가치 있기에 당연히 평생 이 일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좋은 일과 맞는 일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게 내가 맞이한
특수교사 2.0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