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통합체육 같이 해볼래요?”
점심시간, 체육 선생님이 불쑥 말을 꺼냈다.
경력직 신규 교사였고, 나랑 동갑이었다.
아이들에게 관심도 많고, 말도 잘 통했다.
“좋죠! 우리 아이들이 체육 수업엔 잘 참여하니까요.”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설마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큰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보치아’라는 종목을 골랐다.
신체 능력보단 집중력과 전략이 중요한 표적 경기.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우리 아이들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종목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일반체육 수업에서 보치아를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하고,
나는 특수학급 개별화교육에 반영하여 규칙과 활동 방법을 하나씩 준비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나 이거 알아요!” 하며 일반체육 수업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체육 선생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거, 동아리로 만들어볼까요?”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도 엮어서 한 번 해보면 어때요?”
“아, 교육청 공모사업도 있던데, 이걸로 한번 지원해 보죠!”
순식간에 일이 커졌다.
보고서, 연구대회, 외부 지원 사업까지.
나는 출산 직후였고, 백일도 안 된 아기를 키우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래도 끝까지 하려고 애썼다.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는 하자’는 마음뿐이었다.
어느 날, 일정이 어긋나 문제가 생겼다.
나도 모르게 체육 선생님에게 툭 쏘아버렸다.
동갑이라 거리낌 없이 말이 나왔던 것도 있고,
솔직히 그땐 좀 많이 지쳐 있었다.
그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통합교육을 하는 동안 지친 체력 덕분에 내 안에서는 곪아가고 있었다.
몇 달 뒤,
체육 선생님이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합체육 관련 해외 연수 대상자에도 뽑혔다고 했다.
블루오션이었으니 그럴만했다.
그 이후로 그 체육선생님은 전국의 통합체육 관련 연수에 강의를 하러 다녔다.
나는 통합교육을 잠시 접었다.
누군가에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켜졌고,
나는 그 뒤에서 건전지처럼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수업에 참여하고, 웃고, 어깨도 으쓱했다.
그 기억 덕분에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번아웃으로 인하여 무기력해졌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우리 집은 1층이구나...'
하며 소파에 앉곤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압도당하여 표정이 사라졌다.
그러다 아이가 울면 무기력한 표정으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와이프에게도 미안했다.
나 자신에게 제일 미안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와이프에게도 동생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말을 꺼내질 못할 만큼...
메신저로 짝포 멤버의 아내분이신 상담사에게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심리상담소 2군데를 추천해 주셨다.
그 메모를 다이어리에 넣고 나니 드디어 숨이 쉬어졌다.
처음으로 살았다는 느낌을 경험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좀 덜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웃으며 내년을 기약했으면 나았을까?…”
뭐, 이젠 다 지난 일이다.
지금은 내 페이스를 조금 더 챙기면서,
조금은 거리 두며, 다시 마음을 정비하는 중이다.
통합교육은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그 중심에서 ‘누군가가 버티는 힘’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오래 못 간다.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나에게 통합 교육은,
이상형과 만나다 감당하기 벅차 헤어져버린 과거의 아쉬운 추억 같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