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녀 출판시장 분석 칼럼
시장은 유기적으로 변화하기에 칼럼을 썼던 시점과 비교하여 현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편집부에서 본 최종교정디자인본이 아니라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추후 발견 시 수정하겠습니다.
지갑이 초라했던 시절에는 활자 중독자의 욕구를 도서관에서 채웠지만, 그조차 불가능하도록 바쁜 시기를 거치며 도서관의 존재는 뇌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문득 동네 도서관에 들어서게 된 후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다. 코로나19와 재택근무의 합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랄까.
모든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지박령처럼 머물러 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그러나 사라락 책장 넘기는 소리와 책더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 종이책의 낡은 향이 도서관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해묵은 편견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림책 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수료하고, 누군가는 민화를 보며, 누군가는 수어(농인의 의사소통 방법)를 배운다. 또 어느 아이는 체스와 과학 실험을 하고, 어느 가족은 색채 예술극을 관람한다. 도서관은 어느덧 복합문화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는 비단 어제오늘의 변화가 아니다.
이용자가 아닌 출판업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도서관이 아무리 다채롭게 변화한들 ‘도서 무료 제공처’라는 기본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양날의 검이라 할 만하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예산을 준비하여 책을 구비하지만, 특정 도서를 열권씩 구매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단편적으로 생각해 봐도 A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본 사람이 그 책을 구매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읽어보고 괜찮은 책은 꼭 구매한다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들이 안 괜찮다면 당연히 사지 않고, 괜찮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미 읽은 책을 굳이 제값을 주고 새 책으로 소장하려 하지 않는다. 출판업자 입장에서는 안 괜찮은 책도 일단 사주기를 바라게 되기에 도서관 이용지수가 높아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웹소설 시장의 한복판에 있는 입장에서 도서관 이슈를 접할 때마다 웹소설의 다수가 도서관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길 때도 있다. 웹소설 시장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그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실리가 서로 부딪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존재해야만 한다. 왜 세금을 운용하는 권력자들이 시민을 위한 도서관을 줄이려 하는 걸까. 그 의도의 기저를 따져보는 과정에서 오히려 도서관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뚜렷해진다. 때로는 명분이 실익을 앞서야 한다.
수년간의 코로나19가 오랜 시간 멈춰 있게 했으나,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그 와중에도 발돋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2023년에 이르면서 도서관의 세계관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 세계가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듯하다. <기획회의> 580호에서는 도서관을 둘러싼 이슈와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해 살펴보았다. 확장된 세계관이 다시 쪼그라들지, 더욱 입체적으로 발전할지 함께 지켜봐야 한다.
<기획회의> 580호 (2023년 3월 20일 발행) '2023 도서관 유니버스' 특집 인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