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zip중 '고슴도치 청년 이야기' 공모전 당선
가시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다.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숨기며 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딘가에서 상처받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둘러싼 가시를 키웠다. 학교 폭력의 기억은 문득문득 떠올라 그 가시를 더욱 날카롭게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꽁꽁 가시 안으로 숨어들었다. 직장에서도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무난함 속에 숨고 튀지도 않게 중간을 유지하는 삶. 그저 평온함을 지키려는 나름의 방어였다. 고슴도치가 제 몸을 건사하려면 누군가에게 표적이 되어선 안 됐다.
어느 순간, 숨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숨지 않았다. 웅크린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세상과 마주하기로 했다. 움츠린 자세를 바로잡아 갔다. 그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픈 기억은 완전히 아물지 않았고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과거에 발이 묶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았기에.
고슴도치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의 탄생은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더욱 위풍당당하게 나를 드러냈다. 몸 바깥의 가시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아이를 품기 위해 내면의 가시들을 하나씩 뽑아냈다. 행여 내 안의 가시가 아이를 찌를까 두려웠다. 내 안과 밖의 가시는 극명하게 형태가 나뉘었다. 지키는 용도와 품는 용도로.
책임질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직장에서도 더 이상 웅크리지 않았다. 웅크릴수록 더 만만하게 여겨진다는 걸 알았다. 주눅 든 모습은 그들에겐 먹잇감이 됐다. 주눅 들지 않고 밝고 당당한 태도로 일했다. 속이 문드러질 정도로 힘들던 때도 있었지만, 노력은 점점 결실을 맺었다. 밝게 생활하니 직장 생활이 밝아졌다. 어려웠던 상사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후임들은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믿고 따랐다. 웃으면 웃는 날이 많아지듯,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행복이 절로 온다는 말을 비로소 알게 됐다. 결국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실감했다. 더 이상 가시를 꼿꼿하게 세울 필요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움츠러들지 않아도 됐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굳이 가까워져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쳇바퀴 돌 듯 직장 생활을 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지만 웬걸. 내 안의 가시를 걷어내니 사람들과 점차 가까워졌다.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이전에는 몰랐던 사람들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봇 같았던 상사가 삼촌으로 보이고 MZ세대 신입이 막냇동생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직장은 차가운 공간에서 따뜻한 교류의 장소로 변해갔다.
가까워지면서 보이지 않던 부분도 보이고 불편한 면도 마주했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나 사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내가 그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그마한 두려움이 생겼다. 마냥 가까워지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두기가 필요한 때이다.
아무리 가까워졌다고 할지라도, 결국 남이다. 엄연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남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나 역시 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가까워져야 할지, 멀어져야 할지, 거리를 조율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불현듯 오래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학교 폭력을 당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당시엔 사람을 참 많이도 미워했다. 속은 상할 대로 상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툭툭 튀어나왔다. 속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고 그저 듣는 입장이었다. 경청을 잘하니 주위에 사람이 몰렸다. 자연스럽게 인싸가 됐지만, 내면은 아싸였다. 고독한 한 마리의 고슴도치였다.
이제는 그 시절의 상처가 나를 가로막지 않는다. 아픔은 흉터로 남았지만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 아픔을 딛고 지금은 다른 고민에 빠졌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너무 가까워지지 않았나, 어떻게 멀어져야 할까 고민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상처가 아물자, 나처럼 아파하는 이들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웅크린 사람들을 보면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타인의 손길을 거부했듯, 그들도 거부할 수 있으니 천천히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배려로 다가선다. 마음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린다. 티가 나지 않게. 작은 두드림에도 소리와 진동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이 점차 열린다. 처음부터 활짝 열리진 않겠지만, 빼꼼히 열린 그 순간이 기회다. 문틈 사이로 손을 내민다.
십중팔구는 그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손을 외면하지 않는다. 덥석 잡기도 하고 살포시 손을 얹기도 한다. 다시 문을 닫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천천히 기다린다. 마음이 열리는 속도를 맞춘다. 맞잡을 준비가 되었을 때 손을 내민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다.
아이에게 상처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내면의 가시를 제거했다. 덕분에 비로소 온전한 나를 마주했다. 가시가 빠진 내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진정한 나를 발견했다. 본 모습을 마주하니 내가 좋아졌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격의 순간이다.
고슴도치가 되어 보았기에 다른 고슴도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들도 언젠가 나처럼 아픔을 딛고 가시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날이 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야 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서로의 보폭을 맞춰 함께 걷는 그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각자의 시간을 기다려 주는 사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