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청년유니온, <작별하지 않는다> 독서 공모전 대상
작별하지 않았기에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작년까지 제주에서 살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을 내내 마음이 아팠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름다운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에서, 지금도 쉽사리 입에 올리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저자는 역사의 비극을, 트라우마를 잊지 않도록 글로 남겼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는 이른바 ‘빨갱이’를 척결한다는 명목 아래 대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대거 희생되었다.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제주 출신에 대한 사상검증과 유언비어가 퍼졌다. 78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도민들에게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군에 입대한 후 첫 휴가를 제주에서 보냈다. 신혼여행도 제주로 다녀왔을 만큼 제주를 사랑한다. 그러던 중, 제주로 발령을 희망하여 마침내 제주에 살게 되었다. 제주에 있으며 구석구석을 누볐다. 잘 알려진 여행지는 물론이고 향토 문화가 깊게 밴 마을도 찾았다. 제주도민들의 아픔 전부를 헤아릴 순 없겠지만, 제주에 있는 동안 마음이 닫힌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제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었다. 온전히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제주도민들에게 깊게 드리운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저자가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언급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4·3사건 이후, 실종자를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긴 투쟁.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끝끝내 작별할 수 없었다.
저자 또한 4·3사건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족을 향한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술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절절한 심정이 담긴 소설이 과연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절로 숙연해졌다. 끔찍한 기억을 더듬는 일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분명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제주에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깊게 각인되어 있다. 참혹한 학살 현장, 제주도민들에게 뼛속까지 새겨진 상처. 똑똑히 마주하고,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고 제주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다. 제주는 낭만과 환상의 섬이라 불리지만 어두운 이면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여행지로 들린 곳과 학살이 일어난 곳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이 다가왔듯, <작별하지 않는다>에선 소녀가 다가왔던 것일까. 저자는 소녀의 뒤를 쫓아 글을 써 내려간다. 4·3사건에서 희생된 실종자를 찾기 위해 긴 세월 싸워온 소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려던 인선의 집에서, 주인공 경하는 우연히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한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바로 그 소녀였음을. 소녀는 오빠의 행적을 찾기 위해 십수 년을 바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을.
지극한 사랑은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인선에게로,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 경하에게로 옮겨간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들은 끝내 작별하지 않았다. 아니, 작별할 수 없었다. 작별하지 않아서 마침내 이렇게 이 책을 마주했고, 4·3사건의 희생자들을 기억할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올바른 미래를 세워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잘못을 바로잡아 어지러운 이 시국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소망한다.
작별하지 않았기에,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