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우물제

제44회 복사골 백일장 공모전 특선(산문)

by 책읽는 조종사

내 마음속 우물제

출항을 앞두고는 하늘에 바란다. 바닷바람이 잦아들어 오늘도 무사히 배가 뜨고 내릴 수 있기를. 나만의 우물제를 마음속으로 올려 드린다.

이따금 바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파고는 배를 뛰어넘는다. 황천이 성큼성큼 배를 덮칠 때면 우물제를 더욱 정성껏 드린다. 파도 소리가 요란해지면 마음속으로 더욱 세차게 신에게 부르짖는다.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께서 우물제를 받아주셨는지, 바람을 들어준다. 이내 바다는 언제 성을 내었냐는 듯 잠잠해진다. 그러면 배는 다시금 항해를 지속한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수평선 끝을 향해.

옛 선조들은 우물에 제사를 지냈다. 우물 속에 계신 용왕님이 굽어살펴 주시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선조들은 그렇게 우물제를 행했다. 이른 댓바람이 불 때부터 삼삼오오 모여 우물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성심성의를 다했다. 최선으로 용왕님을 모셔야 마을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사를 허투루 할 수가 없었으리라.

지금은 제사가 점차 축소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대대손손 이어져 온 제사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 남아 있다. 제사 간 마을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이 된다. 하나가 되어 마을을 일으켜 세운다. 자연스레 마을엔 번영이 찾아온다. 우물제를 드리며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나, 제사 지낼 때 하나 된 마음 덕택에 마을에 풍요가 찾아오게 된다.

지금은 우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하수도가 뚫려 더 이상 물을 길어서 떠먹지 않는다. 자연스레 우물제를 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물은 없지만, 다른 형태로 우물제를 드린다. 마을 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우물제를 크게 드리는 곳도 있고, 나처럼 개개인의 우물제를 마음속으로 드리기도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현대 사회에는 우물제가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은 마을이란 개념이 옅어졌다. 자신이 속한 마을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다. 내 마을은 없어졌으나, 마음속 깊은 곳엔 우물이 남아 있다. 마음속 우물을 두고 바다의 안녕과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우물제를 드린다.

어릴 적, 아버지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어머니와 손잡고 뜨겁게 신에게 기도했다. 2002년, 아버지는 서해 바다를 지키러 출항했다. 뉴스에는 연일 서해교전에 관한 내용을 급전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제발, 제발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며 전심을 다 해 기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처음 신에게 드린 마음속 우물제였다. 나라를 지키러 배를 타고 출동을 간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뜨겁게 기도했다.

지금은 나의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그리고 구국을 위한 마음을 담아 정성 어린 우물제를 드린다.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니 마을의 번영을 위해 우물제를 드렸던 옛 선조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옛 선조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모든 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나라가 내 마을처럼 느껴진다. 나라를 사랑하는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우물제를 드릴 때, 어지러운 시국에도 안녕이 찾아오지 않을까 바라본다.

오늘도 안전하게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우물제를 올려 드린다. 그리고 대선을 앞둔 지금, 올바른 지도자가 선출되어 이 나라가 순항할 수 있도록 내 마음속 우물제를 상달한다. 우리나라를 보우하시며, 천지창조와 바다를 주관하는 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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