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느 숲을 놀러 갈까

제14회 글나라 백일장 대회 우수상(산문)

by 책읽는 조종사

오늘은 어느 숲을 놀러 갈까

요즘 나는 숲을 통해 위로받는다. 비행하는 조종사이기에 늘 긴장 속에 산다. 어느 날,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나에게 말을 건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여기선 편히 쉬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숲은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 집 베란다엔 숲이 있다. 나무가 우거져 자라는 곳을 숲이라 하지만, 식물이 모여 사는 곳 또한 숲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숲을 키운다. 집들이 선물로 이것저것 선물로 받은 식물들과 양가 부모님 댁에서 업어온 식물들이 주를 이룬다. 온난다습한 제주에서 살 때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숲은 더욱 거대해졌다. 제주 생활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갈 무렵, 가장 걱정된 건 나의 숲이었다. 이사하며 혹시나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특히나 높이 솟아오른 연필 선인장이 혹여 꺾이면 어쩌나 불안했다. 이삿짐을 풀면서 꽁꽁 쌓인 식물 바구니는 손수 풀었고, 베란다에 숲을 조성했다.

식물 사랑은 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꽃집을 하셨다. 집과 꽃집엔 언제나 식물들이 넘쳐났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식물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정겹고 자식같이 느껴졌다. 부모님 댁에 있는 숲은 거대하다. 우리 집 숲은 베란다 하나만 차지하고 있지만, 부모님 댁엔 베란다를 넘어 거실까지 점령하고 있다. 요즘은 두 돌을 앞둔 딸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혹시나 식물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흙이라도 퍼먹으면 어쩌나 싶어 조금씩 베란다로 식물들을 옮긴다. 그런데도 식물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어 하나씩 우리 집으로 분양하는 중이다. 어서 식물들을 데려오고 싶어 ‘언제 부모님 댁 숲을 놀러 갈까?’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결혼하고 나니 놀러 갈 숲이 더욱 많아졌다. 시골에 있는 처가댁은 다육이들이 대숲을 이루었다. 다육이를 전문적으로 키우시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사랑이 담긴 숲이다. 연애할 때부터 종종 놀러 간 다육이 숲은 내 마음속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다육이 숲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일조를 했을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다육이 숲에 자주 놀러 갈 수 있겠지?’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 후 제주로 발령이 났다. 양가 부모님 댁 숲을 자주 못 볼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한편으론 숲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제주에서의 생활이 기대되었다. 오죽했으면 신혼여행으로 떠난 제주에서도 숲과 오름 위주로 둘러봤을까. 제주도 생활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천년의 숲 비자림, 울창한 사려니숲길, 서귀포 치유의 숲, 뷰가 멋졌던 비밀의 숲 등 아름다운 숲이 즐비해 있다.

서귀포에서 태어난 딸아이에게도 숲을 보여주었다. 아직 어려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함께 숲을 산책할 때면 조용히 숲에서 나는 새소리를 감상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최애 동물이 짹짹이다. 아이에게 ‘짹짹이 보러 가자’라고 하면 ‘짹짹!’이라고 큰 소리로 따라 하며 양손을 흔들고 무척이나 좋아한다. 전부 숲에서 새소리를 듣고 자란 덕분인 듯하다. 임산부인 아내를 데리고도 산책을 종종 했다. 뱃속에서부터 들은 소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추측해본다.

어머니 덕택에 숲이 좋아진 나, 나를 따라 숲이 좋아진 아이. 어느덧 4대째 숲 사랑이다. 4대라고 말한 이유는 외할아버지께서도 식물 애호가셨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외조부댁에서 하숙하며 외할아버지의 식물 사랑을 옆에서 지켜봤다. 주말이 되면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두고는 식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 욕조에 담갔다가 빼셨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힘든 기색 없이 숲을 정성껏 가꾸셨다. 옥상에도 마찬가지로 숲이 펼쳐져 있다. 빼곡히 자리 잡은 식물들을 볼 때면 외할아버지는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짓곤 하셨다. 어머니의 식물 사랑도 외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이렇게 우리는 4대째 숲을 사랑하고 숲과 함께한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숲의 규모는 줄어들었으나, 외할머니께서 바통을 이어받아 숲을 관리하신다. 한 번씩 외할머니를 뵈러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외할머니 숲을 언제 놀러 가지?’

숲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다. 양가 부모님댁, 외할머니댁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 놀러 갈 때도 숲을 유심히 관찰한다. 예쁘게 꾸며놓은 숲을 보면 눈에 담아 놓는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다시 집에 와서는 구조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도 고민해 본다. 이번 주말엔 또 어느 숲을 놀러 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숲은 나에게 놀이터이자 친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와의 약속, 그리고 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