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2충1효 전국백일장 공모전 입선(산문)
아버지와의 약속, 그리고 입대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는 해군 장교로 24년을 복무했고, 나는 8년 차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다. 아버지는 내가 군인의 길을 걷겠다는 걸 강요하시진 않았지만 내심 장교로 군 복무를 하길 바라셨다. 군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기에 아버지처럼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나 자신과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아버지에게도 속마음을 말씀드렸더니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좋아하셨다.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기에 아버지와는 마음으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대학교 졸업할 때 지켰다.
장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기뻤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인기에 힘입어 장교 시험의 경쟁률은 역대 최고를 갱신했고 몇 번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중,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때 장교 시험에 마침내 합격한 것이다. 육군이 먼저 최종 발표가 났고, 해군은 최종까지는 발표를 남겨두고 있었다. 우선 육군에 입대를 했다. 입대식에서 부모님을 보며 큰 소리로 다 같이 ‘충성!’을 외쳤는데, 그때 어머니가 흘리시던 눈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얼마 있지 않아 해군 장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아 자진 퇴교를 결정했다. 해군 장교를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다면 기왕이면 해군이 되고 싶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해군으로 복무하고 싶었다.
해군에서의 훈련은 고됐다. 약 3개월의 훈련 기간 동안 살이 10kg 이상 빠졌다. 훈련 기간 중 선배님들과 함께 구보를 걷는 시간이 있는데, 아버지도 함께 뛰었다. 그때의 뭉클했던 감정이 아직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내 뒤에서 환갑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함께 뛰어주니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아버지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뛰었다고 했다. 나와의 약속을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모양대로 지켜내고 있었다.
대학생 때 아버지와 사이가 서먹한 시기가 있었다. 아버지는 장교 시험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할 정도로 유능하셨지만, 나는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아버지도 속상한 마음이 컸을 것이라 짐작한다. 마침내 합격하여 장교로 임관을 했을 때,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를 일전에 뵌 적이 없다. 만약 나도 내 자식이 내 뒤를 이어 군인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응원할 생각이다. 다만, 선택은 본인이 지는 것임으로 군인이 되라고 강요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직업군인의 길은 쉽지만은 않다.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순간을 종종 마주한다. 사명감과 애국심이 없었더라면 아마 진작 전역을 생각했을 것이다. 의무복무도 남아 있어 힘들어도 참고 버티며 이번엔 나라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장기복무자는 의무복무가 10년이다. 최소 임관 후 10년은 군 복무를 해야 전역 지원서를 쓸 수 있다. 나라와의 약속은 내 마음대로 파기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국방의 의무를 지기로 약속했고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묵묵히 복무하는 중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 군인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고, 아버지와의 마음으로 나눈 약속으로 해군이 되었다. 지금은 나라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중이다. 헬기 조종사로 바다와 하늘을 지킨다. 나라와 약속된 시간인 10년이 지나면 어떤 선택을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틈틈이 독서를 통해 시각을 넓히고, 글쓰기를 통해 나를 더욱 알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와의, 아버지와의, 나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