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다시 만나게 될 때를 위하여

제3회 성남시 독후감 공모전 입선

by 책읽는 조종사

훗날 다시 만나게 될 때를 위하여
- 단요, <다이브>를 읽고

다이브라는 책 제목에 이끌렸다. 물속에서 살아남는 훈련을 몇 번이고 받았다. 계속해서 다이브를 해야만 하는 나와의 공통점을 찾고 싶어서 책을 펼쳐 읽었다.

물속에서 살아남는 해상생환훈련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항공기 동체가 바닷속에서 뒤집혀도 살아나올 수 있게 조종사라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훈련이다. 다이브를 한 상태에서 휴대용 산소탱크만을 입에 물고 더듬더듬 항공기 안을 헤집고는 출구를 찾아서 나와야 한다. 책을 읽고선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다시금 생각났다. 물꾼이 된 아이들은 물에 잠긴 서울을 놀이처럼 헤집고 다니지만, 이따금 사고가 발생해 생명을 잃는다. 물속에 잠긴 도심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물속에 잠긴 서울은 터전이자 놀이터였다.

우리에겐 어쩌면 가까운 미래,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 높이가 한참은 높아졌다. 댐을 세웠으나 전쟁이 일어나 댐이 무너져 서울은 잠겼다. 물에 잠기지 않은 높은 산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대다수의 어른은 물이 잠기지 않은 강원도로 터전을 옮겼지만, 그곳은 위험이 도사렸기에 몇몇 아이들은 산에 남아 저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노고산 아이들 사이에서 리더격인 선율은, 남산의 우찬과 내기를 하나 한다. 물속에서 가장 신기하고 진귀한 것을 건져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기로. 선율은 물속에서 기계 인간을 건져낸다. 그 존재가 바로, 2038년의 기억을 갖고 기계 인간이 된 ‘채수호’다. 수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잊힌 4년간의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

“음식을 얼려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먹었던 것처럼 죽은 사람까지도 붙잡아 둘 수 있었던 걸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이아이)”가 떠오른다. 사랑받는 아이로 세팅된 기계인 남자아이가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요정을 찾아다니는 여정을 보여준다. 남자아이는 끝내는 깊은 물 속에서 피노키오에 나오는 요정을 찾고야 만다. 책을 읽으니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든 고민이 다시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기쁨과 슬픔, 고통까지도 느끼는 기계에게 과연 죽었다는 선언을 내릴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수호 또한 기계 인간이다. 그것도 사람일 적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기계 인간. 수호의 부모님은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수호를 잊을 수 없어 기억을 보존시키고선 기계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딸로 남기를 바랐다. 생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기계 인간이 된 수호는 부모님의 태도에서 이질감과 괴리감을 느낀다. 어쩔 땐 사람처럼 대하다가도 문득문득 기계로 대하는 부모님에게서.

“수호는 자신의 기능이 무엇일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항상 웃고, 씩씩하게 돌아다니고, 말을 잘 듣는 것, 화도 싫증도 내지 않고 영원히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는 것. 미래도 과거도 묻지 않고 모든 시간에서 한결같은 것. 그건 딸의 기능도 아니었고 사람의 기능도 아니었다.”

수호는 삶의 이유와 이미 죽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미 죽은 자신이 되살아서 좋은 건 엄마, 아빠 본인들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계 인간이 되어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이 낳은 과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윤리는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유전자 복제를 비롯하여 비윤리적인 생체 실험에 대해 여러 제약을 걸고 있다. 기억을 심어서 기계 인간이 사람처럼 똑같이 생각하게 만들고 여러 희로애락마저 느끼게 된다면, 만들 땐 마음대로 만들었어도 처분 또한 내키는 대로 해도 과연 무방한 것일까.

내 딸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아이의 생전 기억을 보존해 기계에 심어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선택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아이가 되살아난다 한들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비록, 기계일지라도 이미 아이의 기억을 가진 이상 처분 또한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서로에게 고통뿐인 선택이지 않을까. 이러한 생명 윤리적인 부분에서 각자가 생각할 수 있게끔 책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진 게 아닐는지.

읽으면서 가슴이 저며왔다. 내 딸아이 생각이 나서, 죽은 딸아이를 되살리고 싶었던 수호의 부모님 심정이 어느 정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때, 딸아이의 인격을 고스란히 지켜주고 싶다. 훗날 다시 만나면 많이 보고 싶었노라고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주요 문장
• 죽은 사람을 기계로 다시 만든 것 같아. 똑같이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그 말을 입 밖에 내자마자 죽음이라는 게 갑자기 낯설어졌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인데, 예전에는 그걸 피해 갈 방법이 있었던 걸까. 음식을 얼려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먹었던 것처럼 죽은 사람까지도 붙잡아 둘 수 있었던 걸까.

•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 높이가 한참은 높아졌다고. 그래서 한국 주변에 댐을 세우게 되었다고.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서 댐이 무너지고 서울도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그게 벌써 십오 년 전의 이야기라고.

• 밤에는 모든 게 어두워지고 낯설어지고 멀어진다. 낮에 없던 게 나타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선율은 밤에 깨어 있는 건 물에 잠긴 서울을 헤매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잊힌 것들을 건져 낼 수 있으니까.

• 비슷한 고통 근처를 맴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나 살가울 수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 수호는 경이 먼저 아는 척하길 바랐다. 가만히 앉아서 남의 용기를 기다리는 게 비겁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용기가 여유에서 나온다면, 그건 이제 막 깨어난 기계보다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여기서 살아온 사람에게 더 넉넉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 수호는 기계 몸이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갗 아래 있는 게 금속이 아니라 뼈와 피였더라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올라왔을 테니까. 태연한 척 굴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속으로 중얼거린 수호는 가볍게 주먹 쥔 오른손을 가슴팍에 올려 보았다. 엔진은 평소와 같은 세기와 속도로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좋은 거야.

• 모두를 순전한 마음으로 아끼고 용서하고 이해하기란 천사나 할 일이지 사람의 태도는 아니다. 천사처럼 군다는 것은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말을 모르고 규칙을 모르는 것에 화내지 않듯이 기대가 없고 하찮은 존재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다.

• "솔직해진다고 해서 꼭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어도 문제를 풀려면 솔직해져야 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들으려면. 참기만 하고 덮어만 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겉으로 보기엔 조용해 보여도 언제 터질지 모르고."

• 그 한 명이 너무 커다란 나머지 다른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지오가 아는 건, 하나만 떠올리는 사람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는 사실뿐이었다.

• "사고는 예전에 났어도 사람 마음속에서 끝이 안 난다니까."

• 수호는 자신의 기능이 무엇일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항상 웃고, 씩씩하게 돌아다니고, 말을 잘 듣는 것. 화도 싫증도 내지 않고 영원히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는 것. 미래도 과거도 묻지 않고 모든 시간에서 한결같은 것. 그건 딸의 기능이 아니었고 사람의 기능도 아니었다.

• 엄마도, 아빠도 수호가 살아 있어서 좋은 건 본인들이지 채수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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