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최재형 독후감 공모대회 입선
조선의 난로, 최 페치카
- 문영숙,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고
강을 건너 조선 땅을 떠나기까지의 결심. 최재형 선생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노비의 신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조선을 떠났다. 아무런 연고지가 없었던 연해주에서 밭을 손수 일궈내고 개척 정신을 발휘하여 희망을 일궈냈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았다. 바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조선의 최하층 신분인 노비로 태어나 러시아 한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다. 최재형 선생은 ‘최 페치카’라 불렸다. 페치카란, 러시아 말로 난로라는 뜻이다. 그는 러시아 한인 사회에서 난로 같은 존재였다. 연해주에 모인 의병들을 먹이고 재우고, 무기를 제공했다. 한인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32개나 되는 학교를 세웠다. 한인들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데웠던 그의 삶을 조명한다.
힘겹게 강을 건너 러시아로 향했지만, 러시아에서의 삶 또한 쉽지 않았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온종일 밭을 일궈냈으나, 가난은 그의 가족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열한 살에 집을 뛰쳐나온 그는 거리를 헤매다 어느 친절한 러시아인 선장의 집에 더부살이하게 된다. 그 후, 선장의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빈다. 두 번에 걸친 긴 항해는 그에게 원대한 꿈을 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척박한 연해주 땅에 갇혀 지냈다면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광활한 세계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다. 세계를 무대로 하여 큰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항해에 대한 경험이 있다. 해군이기에 배를 자주 탔다. 드넓은 바다를 향해 항해를 하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곤 한다. 태평양을 건너 세계를 향해 뻗어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세계가 얼마나 넓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항해를 하면 짐작이 가능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세계도 끝없이 넓겠지. 항해를 하고 있노라면 안목이 넓어지는 듯하다. 항해는 사색에 잠기게 한다. 생각이 많아질 뿐 아니라 깊어진다. 육지에 다다르면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운다.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배에 타고 있어서 그런가. 배에서는 사고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나에게 항해란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이었다.
“오랜 항해로 세상 물정에도 재형보다 넓은 견문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도 항해는 고독하면서도 성장의 시간이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항해가 불안과 걱정을 안겼지만,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넓은 견문을 갖추었다. 배에서 선장은 그에게 여러 책을 권면하고, 성심성의껏 그를 가르쳤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지식과 지혜를 선장 부부에게 배웠다. 그는 항해하는 중에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독서는 그의 사고를 확장하게 했고, 단순한 상인 이상의 인격과 지성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지적 성장은 훗날 그가 러시아 한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했으리라.
항해 중에 읽었던 책들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책을 사랑하게 된 것도 항해 이후다.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서 업무 외 시간엔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어느새 독서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 무조건 책을 펼쳐 읽었다. 틈틈이 시간을 할애해 책을 읽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항해 중 독서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지식이 하나, 둘 쌓이니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게 되었고, 항해가 더욱 즐거워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건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책을 통해 위로받았다. 책은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는 두 번의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돌아와선 러시아 한인 사회를 일으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 2세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조선의 노비 신분을 뛰어넘어 러시아 한인 마을 읍장과 도헌에 오르기까지 온전히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스스로 절감했고, 무려 32개의 학교를 세우기에 이른다. 이는 한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성과였다. 그렇게 최 페치카라 불리며, 그는 러시아 한인들의 정신적, 물리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헌신은 사적인 이익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장사할 때도 당장 눈앞의 이익만 챙기려 여우처럼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정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사업가로서도 정직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도덕적 기반 위에서 그의 리더십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에도 시기 질투하는 무리가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사촌이었던 봉준이다. 가장 가까웠던 인물인 봉준은 그를 모함했다. 앞에서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지만, 뒤에서는 그를 험담했다. 그는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켰다. 오히려 반면교사 삼아 봉준을 품었고, 훗날 화해하여 봉준과 독립운동을 함께하기에 이른다.
“사람마다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 그때 어떻게 처신해야 잘사는 것인지, 재형은 봉준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그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엄청난 부를 이뤘지만, 결코 그 부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쓰지 않았고, 흔쾌히 독립 자금에 쾌척했다. 그는 연해주 의병들의 아버지였다. 연해주에 모인 의병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기를 제공했다. 그의 재산은 곧 독립운동의 자금줄이었으며, 그의 집은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 안중근 의사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직전까지 그의 비호 아래에서 권총 사격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러일전쟁이 발발할 즈음부터 일본군과 싸웠고, 한일 강제 병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항일 투쟁은 평생에 걸친 신념이었다.
이러한 항일 투쟁의 공로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 직을 제안받을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으나, 오직 명예보다 한인 사회를 위한 헌신을 택했다. 명예나 지위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난로'의 역할을 택한 그의 겸손함과 헌신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조국을 떠나 실향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연해주 한인들 마음 한쪽엔 언제나 채울 수 없는 그리움이 고였다. 그런 망향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한인들에겐 페치카(난로)가 되어 주었다.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은 재형의 신분에 꿈도 꿀 수 없는 엄청난 자리였다. 그러나 재형은 러시아 땅에 살면서 한인들이 붙여준 페치카란 별명에 걸맞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1920년, 최재형 선생은 결국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국하고 만다. 끝내 독립을 직접 보진 못하였으나, 그의 헌신으로 인해 독립이 조금이나마 앞당겨졌으리라.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한 인간이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물로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노비에서 러시아 한인 사회의 난로로,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물주가 되기까지, 그의 행보는 시대를 초월하는 리더십과 도덕적 용기를 보여준다.
사할린 동포들의 국내 이주를 환영하는 위한 음악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러시아 민속춤을 추며 흥을 돋웠고, 향수를 일으키는 여러 음악을 연주해 심금을 울렸다. 조국을 떠나 머나먼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당시엔 몰랐으나,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으니 그 당시 사할린 동포들이 눈물을 훔친 이유를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다. 독립하고서도 반세기도 더 지나서야 조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사할린 동포들. 어쩌면 그의 후손들도 자리하고 있었을 수 있다. 사할린 동포들보다도 더 늦게, 그는 가장 마지막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2023년, 그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해가 운구되었고, 그의 위패와 함께 현충원에 안장했다. 사후 103년 만의 일이다.
최 페치카가 피운 따뜻한 난로는 결코 꺼지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자유와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선사한다. 개인의 욕망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우선하고, 정직한 노력으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자유인의 삶. 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영웅이란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모두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난로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