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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04. 2020

64.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 김용택 / 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 김용택 / 난다


64.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 김용택 / 난다 


200311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봤던 기사 중에 어떠한 책을 읽지 않아도 그 책을 구입하는 행위 자체로, 어떠한 책을 책장이나 책상 위에 올려두는 행위만으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책은 읽어야만 혹은 읽혀야만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나도 그랬으나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책은 만들 수도 있고 읽지 않아도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쓸모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와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였으나 이 책을 마주하고 보니 딱 이해가 갔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어떠한 책을 만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좋아할지 말지 하는 마음이 결정될 수도 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저자를 좋아해서 책이 예뻐서도 아니고 이 책이 나에게로 온 과정 자체가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선물을 가장 좋고 가장 싫다. 책 선물이 다른 선물보다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책을 고르는 안목에서 선물을 고르는 사람의 개인적인 시각은 물론 선물을 받게 될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물할 책을 잘 알거나 선물 받을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좋은 책 선물을 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른 여타의 선물도 그러하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책은 더욱 그렇다.


김용택 시인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표현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눈은 이이이만 했고/ 큰 눈은 이, 이렇게 주먹만 했다.’라는 내용이 그렇다. 이와 함께 나도 나만의 표현법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사람들의 행동을 강요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란 내용을 보고는 내 글이 그러한 것 같아 뜨끔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습니다’ 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정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의미일 수 있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 내용을 이용해 나를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는 무슨 일이든 집중하며 휘몰아/ 일을 끝내고 봐야 한다./ 단숨에 해결해야 하고/ 그 일을 해결해야 다음 일을 한다. (본문 중)’ 나는 이런 사람이다. 또한 ‘때로 이해되지 않는 문화를 용서할 줄 알며 구석에 있어도 빛나는 사람(본문 중)’이 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백용 멘트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말이 예쁘다는 표현이 안성맞춤이다. 시집은 책갈피가 꼭 필요한 책이다. 아니 시집에는 책갈피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밥이 많이 없으니 금세 읽을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자주 멈추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된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시작하는가 싶더니 끝나 버려서, 이 말의 조합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 그렇다.


본문| 인내의 긴장이 길어도 겨울 강에서는 그 결과가 허망할 때가 많다.


인내의 시간이 길수록 허망하지 않은 결과를 마주할 확률은 높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인내의 시간이 결코 허망하지 않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인내의 시간이 길기에 허망하지 않을 거란 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고 때론 착각일 수 있다.


본문| 어느 때부터였는지 나는 단순해져 갔다./ 단순은 단박에 되지 않는다.


나도 과연 단순해질 수 있을까. 단박에는 바라지도 않으니 나는 지금보다 조금만 단순해졌으면 싶다. 내 마음이 내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물론 내 탓이다. 그런데 가끔은 되도 않게 남 탓을, 핑계를 대고만 싶을 때가 있다.



본문| 최소한도의 식량으로 유지된 몸만이 최대한도로 날 수 있다. / 자기 신뢰는 시인의 생명임을 안다./ 존중이 없으면 사람을 깔본다. / 정치인들은 말을 망가뜨리고 망친다. 거덜을 내버린다. / 정치인들이 사용하면 안 되는 말들을/ 법적으로 명시해두면 좋겠다. / 너무 큰 옷은 소매도 찾기 어렵다./ 무리란 돌보지 않는 것이다. / 내 기운에 맞지 않은 일을 무리라 한다. / 무리는 파괴를 가져온다./ 몸이 고장난다./ 이치다.


어디 시인뿐이랴. 자기 신뢰는 모든 이에게 생명이며 생명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너무너무 당연한 이야기들과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말에 대한 법을 정하자는 것엔 적극 찬성이다. 최근 말의 오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원조’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요즘 ‘원조’라는 단어의 의미가 제대로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어떠한 단어가 무분별하게 쓰이게 되면 식상하게 되어 진짜 써야 할 때 썼는데도 그것의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본문| 소용없는 말/ 사람들은 자기에게 소용없는 말을/ 남에게 해준다./ 사람들은 그 누구의 어떤 말도/ 마음에 닿지 않은 많은 일을/ 울면서 겪어낸다./ 지혜란 대부분/ 마음 편할 때 소용되는 말이다./ 남의 말은/ 답이 잘 안 맞는 참고서일 뿐이다./ 딸은 자기들에게 어른이 없다고 한다./ 아빠 세대에는 정치인들도 나라의 어른으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세상 혼낼 사람이 없다./ 이런 욕이 더 있을까./ 정치와 자본과 언론이 우리들의 정신 위에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정신의 끔찍한 초토화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내 마음에 닿았던 내용이다. 특히 ‘소용없는 말’에 대한 정의는 놀라웠다. 어떠한 일을 겪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체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격한 공감이 앞에 오고 뒤에는 그러니 잇속을 챙겨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중간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다. 그러한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런 자식의 이야기를 두고 더 없는 욕이라 여긴다. 시인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 세대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 ‘그게 무슨 소리냐, 이런 어른이 있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대신 ‘어른의 도리’라는 말이 더 많이 쓰여야 한다.



본문| 인간이 닮아야 할 모든 것을 나무는 갖추고 / 흔들리되 무엇도 빌리지 않는다. 정면이 없고 경계도 없다. 볼 때마다 다른 색깔과 모양을 보여주지만 자리를 뜨지 않는다. 해가 들지 않는 잔가지는 죽어 저절로 땅에 떨어지고, 산 가지들은 같이 뻗어 간다.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나무가 되고 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된다./ 뿌리는 공간을 넓히는 가지만큼 뻗고, 방해하는 것들을 돌아가고 넘어간다./ 돌 틈이 생겨도 파고 들어가 저쪽 습기에 가닿는다.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로 태어나 느티나무로 살다가 느티나무로 죽는다.


마음이 순해지는 글이다. 시인은 나무가 인간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나무의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가만히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 또한 참 어려운 일이다. 주어진 역할과 자리에서 도망가고픈 날들이 찾아올 때 나를 견디게 해주는 힘을 떠올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열심’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세상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로 태어나 나로 살다가 나로 죽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나’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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