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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Dec 09. 2018

내가 도쿄에 가야만 했던 이유

나만의 책 문화공간을 꿈꾸며

2018 예술배낭여행

_ 나만의 책 문화공간을 꿈꾸며 1/3  

내가 도쿄에 가야만 했던 이유


무척이나 뜨거웠던 지난여름, 도쿄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어디서 뭐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풍경이자 일상적인 풍경인 나의 퇴근길의 모습


내가 있는 삼례문화예술촌 바로 옆인 삼례역 앞에서는 매일매일 이러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그만의 멋이 있다. 책공방에 있는 동안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고 특히 올해는 더 그러했는데 그런 내게 힘이 되어주어서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개인적인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곳은 책공방인데 나는 그곳에서 기록자, 책 문화기획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기록자는 말 그대로 기록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책공방에서 하루하루를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책 문화기획자’는 조금 낯선 단어일지 모르겠다. 문화기획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많은 분들이 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문화기획자’라는 단어가 조금 부담스럽다. 나는 일반적인 문화에 있어서 전문가라 칭할 만큼의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문화’와 관련해서는 높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 나은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책문화기획자’라고 칭하기로 했다. 또 공공의 분야에서 나는 ‘삼례 책마을’을 꿈꾸는 지역의 청년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의 헤이온와이는 세계적인 책마을이다. 책으로 먹고사는 도시, 책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걸려 헤리포드까지 가서 그곳에서 버스로 1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곳에는 다른 곳에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마을로 성장한 이곳은 지역의 브랜딩 사례로도 많이 소개되곤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있는 삼례에 문화예술촌을 비롯한 책마을을 만들고자 했을 때 이곳 헤이온와이를 롤모델로 삼았기 때문이고 나는 이런 책마을이 내가 사는 지역에 잘 정착되길 바라는 지역 청년이다.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삼례가 책마을이 된다면 굳이 앞에서 열거한 효과들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지역민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함께하는 문화를 공유하고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사는 완주에 이런 책마을이 있었으면 한다. 이것은 내가 책공방에 다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물론 내가 속해있는 책공방도 책마을 안에 오래도록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책공방에 오래 다니고 싶어서가 이유는 아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삼례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책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책공방만이 가진 매력 즉 오리지널리티, 차별성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지역출판전문가 양성과정으로 운영된 '2017 제2기 책공방 책학교' 에 참여한 수강생들과 함께한 모습


내가 책공방에 들어올 때부터 나의 멘토인 선생님은 내게 책만들기를 비롯한 책의 다양성을 만나 볼 수 있는 책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그때부터 막연하게 그런 책마을을 꿈꿔왔다. 다른 분야도 모두 그렇겠지만 지역에서 진정한 책마을이 만들어지려면 지역민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공방에선 그러한 취지에서 지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역출판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책공방이 속해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은 그런 면에서 매우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책공방의 의사 반영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책공방은 그런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책공방에서 책마을의 꿈을 꾸면서 나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찍는 즐거움(사진), 쓰는 즐거움(글), 만드는 즐거움(책)이다.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이어져 있기도 하고 그 사이에는 책이라는 매체가 자리하고 있으며 크게 보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감동의 나눔이다.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은 크게 보아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이러한 판단 하에 이루어진다.    



이번 여정도 그러했다. 내가 아는 즐거움은 내가 아는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공부가 필요해 내가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도쿄로 떠났다. 이번 ‘예술배낭여행’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소위 말해 남의 돈 들여서 가는 건데 더 멀리 가지 그랬느냐, 유럽에 가지 그랬느냐 미국에 가지 그랬느냐 하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도쿄에 가야 했다. 내가 도쿄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2015, 45여 개의 공방, 스스로’ 이렇게 세 가지였다. 이 세가 지의 키워드는 2015년부터 매년 도쿄에서는 45여 개의 공방 혹은 개인 창작자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활판인쇄축제를 열고 있다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꼭 도쿄에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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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활판인쇄 活版印刷
 문자를 주로 인쇄하는 볼록판식 인쇄. 연판, 수지판, 사진 철판으로 하는 인쇄도 포함한다.

_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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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인쇄는 한 마디로 활자를 가지고 인쇄물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 그리고 한국에서는 활판인쇄라는 말보다 레터프레스(Letterpress)라는 단어로 주로 쓰인다. 또한 활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림이나 로고 등을 인쇄하기에 실질적으로는 활자보다는 동판이나 수지판을 주로 이용한다. 이 글에서 활판인쇄는 정말 활자를 이용한 작업을 뜻하고 레터프레스는 다른 여타의 판을 이용한 작업을 뜻한다.    


活版 TOKYO 행사장에서 만난 다양한 풍경

내가 이번 여정을 준비하여 또 축제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나와 같은 젊은 친구들이 그저 활판인쇄가 재밌고 특별하다는 이유로 활판인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여정을 준비하며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거라 기대했던 내게 다소 김이 빠지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진짜 정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자신이 활판인쇄를 시작하는 데 있어 주변의 장인 선생님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도움은 기술 전달뿐 아니라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선생님의 기계나 물건을 받는 것도 포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활판인쇄를 이어 가는 장인 선생님이 많이 안 계셔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나 활판인쇄나 레터프레스를 하는 분들은 보면 유튜브를 이용한 독학이 많은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나는 이번 여정을 통해 미래에 내가 꾸리게 될 ‘책 문화공간’을 어떻게 꾸리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과 더불어 현재 일본의 활판인쇄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했다.     


내가 다녀온 곳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활판 도쿄’ 축제 이야기와 돗판인쇄박물관, 인터뷰를 하고자 방문했던 아홉 가지 공방의 이야기다. 먼저 활판도쿄 축제 이야기이다. 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이 축제와 뭔가 공방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곳에서 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의 여의도를 방불케 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높다란 빌딩 앞에 도착한 나는 주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빌딩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나 안내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던 주변 사람에게 빌딩의 입구를 물어 사진에서 보이는 저 유리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내가 잘못 찾아왔구나 싶었다. 올해는 정말이지 나한테 어찌 이리 시련을 주실까 처음 시작이 안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저 유리문을 통과하는데 유리문을 통과해 고개를 돌리자 내 앞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 사진은 사실 도착할 당시의 풍경은 아니고 두 번째 날 태풍이 온다고 축제를 한 시간 일찍 마치기로 결정이 된 이후 행사 마치기 30분 전의 모습이다. 사진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밖에서는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주변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는 상황이었는데 이 축제장은 마치 딴 세상인 것만 같았다.


이 축제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 축제를 이끌고 있는 주최자를 비롯한 참여 작가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릴 적에 활판인쇄에 발을 들여 지금까지 이를 업으로 하고 계신 장인 선생님급부터 최근 5년 새에 활판인쇄의 매력에 빠져들어 이를 이용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만들고 즐기고 있었다. 또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혼잡스러운 와중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활발한 대화가 활발한 판매로 이어진다는 지점이었다. 구경 온 사람들은 결과물을 보면서 궁금한 것들을 묻고 그것을 구입했다.    


축제운영위원장이신 선생님께서 관람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장인 선생님은 관람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셨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관람객들이 무언가를 물었을 때 친절하게 답변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묻고 주인장들은 자신의 결과물에 관심 갖는 사람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변했다. 나 또한 이 바쁜 와중에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사람들이 많아 나에게 답변을 하는 와중에도 물건을 구입한다는 사람들로 인해 중간중간 이야기가 끊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려 애쓰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좌) 무료로 진행된 레터프레스 부채 만들기 체험하는 모습, (우)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는 사람들의 모습


이곳에서는 상품 판매만이 아니라 한쪽에서는 무료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자그맣게 외국의 레터프레스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떠한 축제장에 가보면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있으나 이 축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떠한 축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무게 중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만 심하게 기울어진 경우 당시에는 즐거웠을지언정 오래 남는 바가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축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전시였다. 활판인쇄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축제장에 왔어도 과거에 활판인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 전시가 이 축제의 무게를 잡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방식만이 진짜라고 나머지는 다 가짜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이해 없이 변형된 현재의 모습만을 추구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의 오리지널리티와 변화된 현재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축제장에서는 이 두 가지가 잘 어우러지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좋았고 부러웠다.    


참고 > 본 기록은 완주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예술인 성장지원 '예술배낭여행'에  '책문화공간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선정되어 경비를 지원받아 떠났던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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