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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05. 2020

35. ‘우리는 같은 출발 선상에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요지후리 분페이 / 안그라픽스


35. ‘우리는 같은 출발 선상에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요지후리 분페이 / 안그라픽스


180501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있어 가제본은 누구보다 특별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으니 오죽할까. 글쓴이가 말한 것과 달리 좋아하는 것을 찾아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이 책의 첫인상은 조금 알쏭달쏭- 했다. 처음 이 책의 리뷰단을 선정한다는 글을 보았을 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행복한 반면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답이나 이 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뒤에 ‘공감할 거야’라는 말이 숨겨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책에는 내가 원하던 그런 답이나 위로가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이 책을 보신 선생님께선 이 책을 두고 북 디자이너와 같이 전문가들이 읽기엔 너무 가볍고 디자인에 대해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읽기엔 너무 무겁다는 평을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그 평을 듣고 나서야 내가 이 책에 크게 매력을 느꼈던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차렸다. 이 책은 디자이너가 아니지만 아주 조금 디자인을 할 줄 알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전문가는 아닌 나 같이 어중간한 사람들이 읽기에 딱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딱이었다. 내용의 전문성 수준뿐 아니라 지은이의 사고방식도 내가 생각하는 방식가 닮아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촘촘하게 읽는 편인 내게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꽤 어려운 숙제다. 내 마음은 알록달록해서 이 부분은 이래서 이 부분은 이래서 매우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딱 한 구절을 기억할 수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면 아래의 구절을 택할 것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면 왜 그걸 하는지 언어로 쌓아야 모노즈쿠리를 지속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감각만으로 디자인하는 시대는 곧 끝난다’ 디자이너는 감각만으로 디자인할 게 아니라 ‘왜 그것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언어로서 쌓아가야 지속해야 작업할 수 있다.



내가 메모했던 수십 가지 문장 중에서 이 부분을 선택한 이유는 이 이야기가 비단 디자이너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공방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앞으로의 대부분의 일들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만의 색깔을 무던히도 강조하는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결 중 하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은이가 어린 시절 만났던 선생님처럼 나의 선생님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해 신랄하게 논리적 분석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이시다.


나 또한 원래 내 안의 그런 성향이 있었던 것인지 지은이처럼 그런 선생님을 만난 덕분인지 한때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중에는 사람들이 내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괜히 내 에너지를 써가며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래, 내가 맞아,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라는 옹졸한 생각을 했을 테지만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그래, 내가 맞아’가 아니 ‘그래, 나의 이런 면은 하나의 결일 뿐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그래도 괜찮다. 너와 같은 사람도 여기 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방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때로는 너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저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진심으로 일을 대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든 어떠한 일을 직업으로 삼든 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일을 하며 느낀 바 어떠한 일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좋아하던 일이든 직업으로서의 일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은이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 어릴 적에 아버지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길러진 변증법적 사고를 기초로 해 광고회사에 들어가 자신을 지운 채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경험을 통해 쌓은 실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내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지난 시간은 주변인과의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 사고를 길렀던 시간에 해당하고 앞으로의 시간은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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