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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06. 2024

새로운 한 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한 해가 또 시작되었다. 30대 초반만 해도, 해가 바뀌기 전이나 혹은 아무리 늦어도 해가 바뀐 직후에 한 해의 마무리는 모두 끝냈는데 나이가 드니 그것도 귀찮아졌다. 어쨌든 신년도 매일매일의 연장선 중 하나고, '연'(year)의 숫자가 바뀔 뿐 딱히 지난해를 꽁꽁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작년의 느낌과 기분을 음미하고 싶기도 하고, 2023년 끝! 2024년 시작! 이렇게 시간을 분절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이 말하듯, 자신의 결심을 대중에게 공표하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목표를 세우고, 매년 미달성에 실망하던 내 자신이 조금 불쌍해 보여서 30대부터는 딱히 목표를 정하지 않고 살았는데 작년 후임이 '목표를 정하세욧!'라고 면전에 대고 이야기한 게 문득 생각나 올해는 아주 오랜만에 목표를 정해 지내려 한다. (사실 아직 구체적으로 뭔가 목표를 정하진 않았다.)


블로그에서 공표할 만한 목표는, 1)운전면허 따서 운전하기, 2)적어도 주 3회 글쓰기, 3)매일 일기 쓰기, 이 정도가 되겠다. 2)번과 3)번은 어쨌든 '기록'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지만, 1)번이 좀 생뚱맞긴 하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작년 필라테스 사기를 당하고(젠장) 소송에서도 이겼는데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우리나라 법이라는 게 '돈을 주시오.'라는 판결이 나도 강제성이 별로 없다 보니 사기꾼이 돈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80만 원을 받으면 기념하는 의미로 운전면허 수강생으로 등록하려 했지만.. 한 해가 끝나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니, 상반기에는 면허를 따서 운전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니 주제를 알아야지? 앙?'이라는 감정적인 의미보다, 진짜 나 자신을 알면, 내 성향을 알면, 액션을 취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추진력이 있는 사람으로 알지만, 사실 뭉개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 사람들이 본 내 추진력은 뭉개고 뭉개다가 죽이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움직인 모습일 거라 장담한다. 운전도 그렇다. 이제 뭉갤 만큼 뭉개서, 더 이상 뭉갤 건더기도 없다.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움직일 때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신년 증후군'에 시달렸다. 의학적 용어도, 철학적 용어도 아니다. 그냥 내가 만든 용어다. 나는 취업을 늦게 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지만, 28살 계약직으로 입사한 회사가 정식으로 회사를 다닌 첫 회사였다. (나머진 인턴이었다.) 감사하게도 당시 같이 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이 나와 모두 한 살 터울이라 늦은 취업이 이상하다는 것도 잘 못 느꼈다. 한 명은 29살 언니, 한 명은 27살 동생이었다. 취준생 시절 3월이었나. 나는 갈 곳이 없는데 창밖의 아주 어린아이들도 어린이집 등 모두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에 스스로가 비참했던 적이 있다. 신년 증후군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모두들 새해에 많은 것들이 변하는 데 나는 그대로다.'라는 자괴감과 우울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특히 인스타를 할 때마다 감정의 기복이 더 커졌다. 그래서 새해에는 이 모임, 저 모임, 각종 모임에 가입해 자기계발에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몇 년 꾸준히 한 다독의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올해는 딱히 신년 증후군이 없다. 생각해 보면 작년부터 경계가 흐려졌던 것 같다. 올해 1월 1일은 별생각 없이 방 정리를 했다. 지금보다 깨끗하고 신선한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넘쳐나는 책을 위해 소형 책꽂이를 구매한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 후로 내성발톱인지, 뭔지, 여하튼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파서 은근 신경 쓰느라 신년 증후군을 앓을 틈도 없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그저 이렇게 일상을 지키는 게 좋은 거라고, 굳이 새해가 됐다고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거나, 변신을 해야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분절의 개념이 아니다. 흐르는 개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해 첫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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