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Dec 20. 2024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언어를 처음 배운 아이가 열심히 간판을 읽어보듯

요즘엔 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사라집니다. '갓 구운 생각'에 딱 어울리는 생각들이었는데 말이죠. 내년엔 손바닥 반 만한 사이즈의 작은 노트를 사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빠르게 써볼까 해요.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잡기도, 쓰기도 편한 그런 노트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한 말입니다. 의술에 서투른 사람이 사람 고쳐주겠다고 나대다가 사람을 잡기까지 하고, 뭐 그런 부류의 이야기예요. 아는 지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심리학을 배우러 대학원에 갔어요. (대학교일 수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대학원까지 가기엔 필수 전공이라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 그런 것들이 부족해 생각만 하다 접었는데, 선뜻 실행에 옮긴 지인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대학원을 다니더니 모든 상황을 다 '심리'렌즈를 끼고 분석하려 하더군요. 제 지난 글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돌발성 난청과 급성 두드러기로 힘든 11월을 보냈는데요. 지인에게 이 말을 하니 대뜸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대답이었습니다. "네가 어릴 때 받은 학대 트라우마가 지금 몸으로 발현되는 거야."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조금 황당하더군요. 학대 얘기가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그분은 제 어린 시절을 모릅니다.) 모르겠고, 전혀 예상치 못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헛웃음이 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하니까 뭐 그런 새기(욕을 조금 순화시켰습니다.)가 다 있냐고 당장 연을 끊으래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이 분이 이런 식의 대화를 시작한 게 딱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였어요. 그전까지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거든요.


팀을 옮기는 것에 대한 일상적인 말을 해도, 제 무의식에 문제가 있다로 모든 대답이 귀결되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더라고요. 선무당인 그분이 저를 잡기 전에, 제가 그분을 먼저 잡을 것 같아,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뭐든 너무 과몰입하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아니면 그런 거 있잖아요. 언어를 처음 배운 아이가 눈에 보이는 족족 열심히 간판을 읽어보듯, 새롭게 입문한 학문이 너무 즐거워 모든 현상을 '심리'렌즈를 끼고 해석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한 귀로 흘리련다.'라는 태도도 중요하더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