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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09. 2020

걸어서 식당 속으로 (1)라멘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판되는 일반적인 라면보다 일본 라멘을 좋아한다. 태어나 처음 일본라멘을 먹었던 때는 아주 더웠던 2016년의 여름이었다. 매주 목요일은 '팀점의 날'이었는데 소위 젊은 팀으로 불렸던 우리 팀은 늘 상수동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녔다. 그날은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라멘 먹고 싶지 않아?"


나는 점심에 무슨 라면이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막상 실물을 놓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 라면이 아니었다. 지금의 2호점이 없이 작은 1호점만 운영했던 라멘집에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고 나무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각자 라멘을 주문했다. 종류도 없었다. "라멘 네 개에 군만두 하나요!" 우리는 당차게 주문했다.


손이 바쁘다. 작은 종지 그릇에 조각난 김치와 청양고추를 담는다. 라멘에 김치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본라멘을 먹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보니 '현지화된 라면'을 먹는다는 기분이다. 나무 테이블에 손을 얹는다. 약간 끈적끈적하다. 라멘을 우려내는 육수 국물이 공기 중에 돌아다니다 테이블에 앉아 오래도록 절여진 느낌이다. 이마저도 맛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라멘이 나온다. 중국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이상한 핑크색 용이 그릇에 그려져있다. 둥근 계란도 들어있다. 약간 누리튀튀해 보이는데 라멘집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국물에 절여진 계란색인지 분간이 안된다. 큰 돼지고기 덩어리도 있다. 수육 같기도 하다. 그 안에 면이 살포시 꽈리를 틀고 있다. 다소 기름진 국물. 수저로 한 입 떠먹어보니 돼지 육수 맛이 아주 진하다. 순간 국밥인 줄 알고 '크으'라는 소리를 낼 뻔했다. 뜨끈하고, 꾸덕하고, 다소 기름진 느낌의 국물이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군만두가 나온다. 네 덩이의 만두가 얇고 바삭하게 구워진 피를 공유하며 조밀 조밀하게 붙어있다. 붙어서 튀겨진 피를 쪼개려 젓가락을 갖다 대니 '바삭' 소리가 난다. 군만두를 한입 물자 안에 있던 촉촉한 만두 육즙이 흘러나온다. '오! 이 만두 괜찮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진다. 군만두 한 입 물고 다시 라멘에 집중한다. 면과 육수, 계란과 돼지고기, 나는 각각 먹는 것을 좋아한다. 계란 노른자를 입에 물면 그 부드러움이 극대화돼 입천장과 혀 만으로도 씹을 수 있다. 부드러운 돼지고기는 젓가락질 몇 번이면 속수무책으로 흐트러진다. 아주 잘 고아졌다.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를, 김치와도 먹기도 하는데 나는 주로 처음 본연의 맛을 즐기고 면발이 1/3쯤 남았을 때 청양고추를 넣는다. 느끼함을 잡아주는 맛이랄까. 별다른 대화 없이 고개를 그릇에 처박고 라멘만 먹다 보면 한 그릇은 금방 비운다. 양심상 돼지기름이 떠있는 국물을 마시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 누구처럼 양손으로 그릇을 잡고 국물을 꿀덕꿀덕 모두 마셔보고 싶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라멘을 먹고 나와 회사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걸어간다. 약 15분, 길게 잡으면 20분 걸리는 그 거리를 걷는 건 하나의 의식 같은 거다. 다소 무거운 음식인 고기 라멘을 조금이라도 소화시킨다는 의식과, 온몸에 밴 그 좁고 좁은 라멘 가게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덜고 회사로 들어가려는 의식이다. 나는 이 두 의식을 모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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