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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11. 2021

한 잔의 여유, 나의 소울 푸드

생각해 보니 바닐라 라떼를 '주 종목'으로 마시기 시작한 건 서른 살 무렵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얼죽아메'파였는데, 바닐라 라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살이 찐 거 같으니 나의 몸무게 증량과 아이스 바닐라 라떼(이하 아바라)에 쓴 돈은 비례하다 하겠다.


20대 중반인가. 당시 우리 동네에 '띵크 커피'가 생겼었는데 뉴욕에서 온 듯한 카페 분위기가 몹시도 만족스러웠던 나는 (참고로 뉴욕에 가 본 적도 없다) 취준생 시절 모든 약속을 '띵크 커피'에서 잡을 정도로 빠져 있었다. '띵크 커피'의 주 종목은 '스페니쉬 라떼'. 왜 스페니쉬 라떼지? 도대체 여기엔 뭐가 들어가는 거지? 늘 궁금했지만 소심한 인프피인 나는 주인에게 단 한 번도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없고, 그렇게 스페니쉬 라떼에 1년 정도 쩔어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스페니쉬 라떼는 연유 라떼였다. 서울 근처의 카페들은 모두 스페니쉬 라떼 옆에 큼지막한 크기로 '연유라떼'라고 써 놓았는데, 질문이 많아서 였는지, 아니면 낯선 이름 때문에 주문량이 적어서였을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스페니쉬 라떼를 기점으로 달콤한 커피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라떼 사랑은,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보니 바닐라 라떼라는 특정 항목에 꽂혀 있었다.


이쯤 되면, '달달한 커피를 다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내 대답은 확고하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바닐라 라떼 외, 헤이즐넛 라떼, 카라멜 마끼아또, 모카 등 다른 종류의 단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심지어 헤이즐넛 시럽은 내 편두통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걸 알아서 입에 대지 않는다.) 유별난 바닐라 사랑이다. 그렇다면, 바닐라 파우더 파인가, 아니면 시럽 파인가?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둘 다 상관 없다. 사실 내 입은 파우더와 시럽을 구분할 정도로 고급 지지 않다.


여러 음식 중, 왜 '바닐라 라떼'가 내 소울푸드가 됐나. 고민해 봤다. 생각해 보면, 나는 유독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바닐라 라떼를 마시고 '좋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한 기분 좋은 이유들이 모여 '아바라=고로케의 소울푸드'라는 공식을 만든 거 아닌가 싶다. 머리가 띵- 아플 때, 시원한 아바라를 한 잔 꿀꺽꿀꺽 넘긴다.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그리고 달큼한 그 커피가 위장을 휙- 쓸어 만진다. 그래.. 이 달콤함이지! 그렇게 몇 입을 꿀떡하면 금세 커피는 바닥을 드러낸다.


규칙도 있다. 아바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실 것. 평소 하루에 두 잔정도 커피를 마시는 나는, 오전엔 아메리카노, 그리고 식후 아바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당'에 대한 걱정도 있고, '한 잔이 주는 희소성과 기다림'이라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에 두 잔도, 세 잔도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바라는 더 이상 기다려지는 커피가 아닌, 그저 소비되는 커피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될 거다. 나는 내 소울푸드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소울 푸드'라는 주제어에서 다른 음식을 찾으려고도 해봤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해 봤다. 뼈해장국, 컵누들, 잡채, 비빔밥, 볶음밥, 꿔바로우, 쌀국수, 짜조, 칠리새우, 치킨 등..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우울할 때나, 몸이 아플때나, 기분이 별로일 때,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그냥 그럴 때 버릇처럼 찾는 음식은 '아바라'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곁에서 함께하는 음식, 그거야말로 진정한 소울푸드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저녁이다.


*플러스) 직접 만들어도 먹어봤는데, 아바라는 늘 사 먹는 그 맛이 안 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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