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어떤 영화를 여러 번 봤는지를 보면 알 수 있데"
우연히 카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오랜 시간 맴돌았다. '반복해서 자주 본 영화'라.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분명하게 두 영화를 즐겨 봤던 것 같다. 하나는 '나비효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13 going to 30'. 나열해 놓고 보니 웃긴 게 두 영화는 결이 아주 다르다. 하나는 스릴러에 가까운 영화고 다른 하나는 로맨틱 코미디 물이다. 그런데 또 나열해 놓고 보니 놀랍게도 두 영화의 공통 주제가 있다. '미래 주인공이 과거를 바꾸려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냐고 묻는다면 별로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쌓아온 과거를 무너뜨리면 현재의 자아가 무너진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다. 우리는 절대 과거를 바꿀 수 없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33년을 살았고, 여러번 생각해도 맞는 이야기 같다. 미국인 감독과 한국 직장인인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작품 속 감독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무쓸모임 월간 주제로 '소설 혹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면?'을 꼽은 사람은 나다. (글이 2주나 늦어서 죄송하다) 그 당시만 해도 '그레이브 야드 북'의 주인공인 '노바디 오웬스'가 되고 싶었으나, 그리고 그를 생각하며 주제를 고집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무덤가에 사는 소년이 되어 무엇을 할꼬,라는 진지한 상상에 빠졌고 고민고민하다 나비효과와 13 going on 30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발랄하고 통통 튀는 13 going on 30의 주인공 제나도 좋지만, 그녀는 아무런 능력이 없으므로 딥하고 우울하지만 일기장을 통해 과거를 넘나들 수 있는 에반을 선택하겠다.
우연찮게도 나 역시 일기를 매년 쓰고 있기에 (회사를 다니면서는 드문드문 쓴다) 에반이 된다면 내가 머물 수 있는 과거의 공간이 너무나도 많지 않을까 싶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주 현실적으로는 공식적으로 취직을 했던 28살로 돌아가 대출을 왕창 받아 집을 한 채 살거고, 비트코인을 몇천만 원어치 사두겠다는 계획이 있으며.. (웃음), 좀 더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22살 미국 기숙사에 다 같이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고백하고 결혼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
꿈은 꿈,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요새는 그저 평범하고 열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희로애락이 엉켜있는 오늘 역시 미래의 고로케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한 파트가 될 수도 있으니, 그저 주어진 24시간을 감사하고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보자 다짐하는 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