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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Nov 07. 2021

퀴디치 스타의 꿈

[월간 무쓸모] 내가 만약 '해리포터'가 된다면

   햇수로 벌써 3년째 함께 글을 쓰는 <무쓸모임>에서 매 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멤버들과 공통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번 달 주제는 '내가 소설/영화/만화 속 주인공이 된다면?'인데, 솔직하게 고백하면 이미 마감일을 일주일 이상 넘겼다. 그 이유는 글의 소재가 되는 주인공을 정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주제를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반성한다.)


  최종 후보에 올랐던 주인공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다. 시대가 바뀌어도 전 세계 여자들의 영원한 이상형일 '미스터 다아시'의 사랑을 받는 엘리자베스를 제치고 나는 해리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러기 전에 먼저 나에게 있어 해리포터는 단순한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는 해야 하는 일이 없었던 중학생의 나는 책을 좋아할뿐더러 많이 읽기까지 했다. 엄청 재밌는 책이 있다고 해서 친구에게 책을 빌려 읽었다가 미친 듯이 빠져서 밤에 잠도 안 자고 그 당시 3편까지 나왔던 시리즈를 다 읽었는데, 그 시리즈가 바로 <해리포터>였다. 나중에는 해리포터 인터넷 팬카페도 가입해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정모도 참여했었는데, 이건 친구들이 심심할 때마다 놀리는 나의 과거 중 하나다.


  10대 때 가장 관심을 가지고 좋아했던 것들 중 하나인 <해리포터> 세계관 속에서 막상 내가 제일 좋아한 사람은 주인공 해리가 아니었다. 형제자매들에게 치이고 유명한 친구들에게 묻혀 존재감 없는 해리의 친구 론이 왠지 모르게 현실의 나의 모습에 투영이 되어 안쓰러웠고, 마찬가지로 해리의 친구이자 영리하고 똑똑해 학업성적이 우수한 헤르미온느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포터가 되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 그가 퀴디치 스타라서다.


 퀴디치는 마법사 세상의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다. 선수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경기를 하는데 해리의 포지션인 수색꾼이 골든 스니치를 잡으면 시합이 끝난다. 당연히 현실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빗자루 같은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씩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 떠있는 걸 상상했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어 바깥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만 타도 긴장하지만,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반복적으로 꾸는 꿈 중 하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다.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다닐 때는 정말 재밌는데 왜 현실에서는 높은 곳을 무서워할까. 나는 그 이유를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속 불안에서 찾는다. 떨어져서 즉사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어 평생 침대 위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리포터> 세계관 속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낙하를 막을 수도 있고 부상을 입더라도 치료가 가능하니 내 마음속 불안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그건 스포츠일 것이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이나 2002년 월드컵을 제외하면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학창 시절 제일 싫어했던 과목 중 하나는 체육이었고, 체력장은 거의 대부분 5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스포츠가 주는 쾌감까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살면서 한 번은 겪는 아주 예외적인 일들이 누구나 있듯이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피구 반대항 시합에서 최후의 1인으로 남은 적이 있었다. 상대편이 던지는 공을 잡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어떻게든 피해보겠다며 요리조리 몸을 놀리다가 결국 체력이 떨어져 날아오는 공에 몸을 맞았던 때까지. 평소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조차 나만 바라보며 주목받을 때 평소의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이룬다는 느낌이 주는 유대감은 꽤 강렬해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조차 해리포터가 되어 한번쯤은 퀴디치 우승컵을 손에 쥐어보고 싶어 진다.


  그동안 읽은 책이나 봤던 영화 만화가 한 두 개가 아닌데 결국 되고 싶은 주인공은 이미 10년도 더 전에 '덕질'을 끝낸 해리포터라니, 왠지 허탈했다. 게다가 해리가 되고 싶은 이유가 해리의 용기나 도전 정신이 아니라 퀴디치 때문이라니... 아마도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기에 지금의 나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초현실적인 <해리포터> 세계관의 힘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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