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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01. 2022

연초 우울함

잘 지나가나 했더니만 1년 정도 잊고 지냈던 연초 우울함이 심하게 온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에도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모두가 꼴 보기 싫어 동굴 속에 처박히고 싶은 이 심정. 아아, 너무나도 껄끄럽다. 매년 찾아오던 연초 우울함은 1년 중 빛났으면 하는 1-2월을 가장 싫어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작년에는 연초에 전혀 우울하지 않고, '깨끗하고 밝은 겨울 햇빛이여...'라는 포근한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올해는 확실히 다르다. 


"스트레스 때문에 오른쪽 어깨가 굳어서 그래. 스트레스는 나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어요."

한의원 원장님이 한 말이다. 금요일에 찾아온 두통으로 점심시간에 엉엉 울다 다시 상담 예약을 했다.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던 원장님은 '이번 주에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일 많이 했어요?'라는 질문을 했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이전에는 운동으로 풀었다면 치료를 받기 시작한 8월 중순부터는 숨쉬기 외에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어디 풀 곳도 없었다. 그래, 원장님 말이 정답이다. 접영을 해도 될 만큼의 깊은 신년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도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듯하다.


사실 이번 주가 많이 힘들었다. 1주 정도 부재했던 팀장의 복귀와 동시에 일도 터져 나왔다. 나는 계획대로 일을 쳐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다시 돌아온 팀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두서없이 일을 던졌다. 짜증이 많이 났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잘 치료되고 있다 생각했던 두통이 두 번이나 재발했다. 평소 같으면 '쳐 죽일 놈의 두통' 정도의 욕을 하며 약을 먹고 고통이 가라앉길 얌전히 기다렸겠지만 갑자기 억울해서 눈물이 터졌다. 전날 먹었던 진통제가 듣지 않아 다음날 오전 10시쯤 편두통 약을 먹다 혼자 엉엉 울었다. 금요일 오전도 그랬다. 왜 그런지 머리가 또 아팠고, 이전 같았으면 '죽어야 끝나것네'라고 욕을 했겠지만 점심을 먹다 엉엉 울었다. 치료받는다고 돈과 시간을 공들인 게 아깝기도 했고, 뜬금없이 억울하다는 감정이 끼어들면서 눈물이 펑펑 났던 것 같다.


회사 동료에게 연초 우울증이 온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내가 연초에 부쩍 우울함을 느끼는 이유는 '세상은 변해가고, 내 주변도 변해가는데, 나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는 게 없구나'라는 정체된 느낌에서 오는 우울함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까운 형제와, 이웃과, 친척과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자랐다. 요새도 부모님께 '남과 비교하는 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최고의 비법이니 그만하라' 말할 정도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알게 모르게 나는 혼자서도 남과 비교를 해왔나 보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적다 보니 SNS속 깍두기만한 사진을 통해 친구와 비교를 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비교를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정체'된 것에 대한 불안과 우울함을 느꼈다. 그러한 감정이 가장 고조된 것이 사람들이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연초였다.


답답한 마음에 책을 읽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는 분명 이런 우울함이 없었다. 작년 1월 독서모임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혼자 긴장하고 설레고 귀찮아하느라 우울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게임에 푹 빠져 하루에 2시간씩 꼭 게임을 하느라 감정에 귀 기울일 시간도 없었다. 이 경험을 반영해서 내년 1월에는 새로운 수업을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적인 변화 말고도 내적으로 탄탄해지는 방법은 없는지도 고민이 된다. 그래도 작게라도 위안을 받은 건 이렇게 연초에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 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주변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해 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명쾌해서 되려 마음이 시원해졌다.


"야, 넌 연초에만 그러지? 난 12월부터 그래서 미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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