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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Apr 24. 2022

흩어진 'ㅎ'을 찾아서

또다시 무기력증이 왔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왜 나는 인스타그램도 죄다 자기계발에 미친 사람들만 팔로우를 했는지, 오늘 뭐 했다, 열심히 살려면 뭘 해야한다 등의 내용으로 가득찬 피드를 보자니 갑자기 그냥 다 피곤해졌다.

'뭘 위해 1분 1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살지?'

'나는 왜 책을 읽지?'

'나는 왜 운동을 하려고 하지?'

'나는 왜 만화를 그리지?'


아, 다 귀찮다. 주일인 오늘은 교회에 다녀온 후, 그냥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거나, 엉덩이로 있는 힘껏 나를 밀고 베개를 차지한 강아지를 쳐다보거나, 웹툰을 슥슥 보거나, 브이로그라면서 하루 종일 먹기만 하는 유튜브를 보거나 했다. 운동이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일어났다. 불룩 나온 뱃살을 만져보곤 잠시 현타가 왔지만 다시 누웠다. 모든 것은 '자기만족'으로 귀결되는데 요즘의 난 뭘 해도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고 목표도 없어 큰일이다.


그러다 문득, 몇 주가 지난 '무쓸모임 공통 주제' 글쓰기가 떠올랐고 책상에 바로 앉았다. 지난 공통 주제는 '마음에 드는 기사를 찾아 공유하기'였다. 따가운 햇살과 달리 바람은 무척 추웠던 3월의 어느 날, 내 눈과, 머리와, 마음에 자리 잡은 기사가 하나 있었다. 제목은 '코로나 난리 통에도 전 세계 가장 행복한 나라 1위 지킨 이곳...' 이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944507 )


기사를 보니,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 공통점은 '자연친화적'이고, '예술과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정도로 정리가 된다. 그래, 자연이 정답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무력함이 들 때마다 동네 뒷산에 올라 슬슬 걸었다. 일을 하다가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나도 미련 없이 퇴근 후, 바로 뒷산에 올라갔다. 그러고 나면,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너무나도 작고 하찮게 느껴졌다. 며칠 지나면 기억도 나지 않을 일들에 기운 빼지 말자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달, 'the giver'(아마 '기억 전달자' 정도로 번역이 됐을거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문득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도 나는 '9월인가 10월쯤, 거실 한복판에서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동시에 느끼며 자는 낮잠. 강아지 두 마리 겨드랑이 필수 지참'이라고 대답했다. 기가 막혔다! 솔직히 말하면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그리스 해변가에서 마시는 올리브 칵테일이요.'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커피 한 잔과 읽는 책이요. 좋더라고요?'

'남들 잠든 새벽시간 파리 광장 한가운데서 재즈 음악을 듣는거요.'라고 남들은 고급스러운 답변을 하면 어쩌나, 경험 부족을 너무 티 냈나, 별 시덥잖은 질문과 답변에도 남의 눈치를 보는 내 자신도 기가 찼다!


그런데  순간 누가 말문을 열었다. '나도 고로케처럼, 예전에 쿠버다이빙 했을 때요. 바닷속이 세상과 달리  조용했는데.  기억이 제일 행복하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르르 각자 자연 속에서 체험한 것들, 아주 사소하게는 시원한 겨울바람 등이 행복했노라 고백했다. 그렇다, 돌고 돌아 말하지만 인간은 자연과 함께할  행복하다.


기사를 보면서 상상해 봤다. 북유럽에서 사는 내 모습을. 핀란드 작은 집에 사는 고로케를 그려봤다. 인터넷이 느려 사진 한 장 전송하는 데 10분이 걸리고, 마켓컬리와 쿠팡 로켓배송은 꿈도 못 꾼다. 인터넷으로 뭘 하나 시키면 1주는 기본이다. 차가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창문을 열면 성냥개비 아파트를 세우는 공사장이 아니라 나무들이 보이고, 가까운 곳에 호수나 바다가 있고, 경쟁 속 자기계발에 미친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이 그려졌다.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예전 과외 제자가 나에게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 스트레스 받을 땐 국자로 까만 국물을 퍼낸다고 생각하세요. 머릿속에 고여있는 까만 국물이요.'


머릿속에 까만 국물을 거둬내고 핀란드 국물을 넣었다. 상상만으로도 좋아졌다. 아, 참 좋다. 거리 두기가 풀려 서울로 출근하는 날이 더 많아졌으니, 휴가를 내고 전시도 보고 그래야겠다. 그리고 실외 마스크 착용이 사라지면 풀 내음과, 비 오는 날 비릿한 냄새와 꿉꿉한 여름 공기도 잔뜩 마셔야겠다. 그러면 이 무기력증도 한결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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