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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May 01. 2022

오해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월간 무쓸모] 고로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오만과 편견』


c. unsplash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책을 굉장히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구색 맞추기 식이 아닌 '볼만한' 책들이 있는 도서관을 만날  있었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이 어쩌다  권씩 사주시는 책을 여러  반복해 읽기도 하고, 번역이 엉망으로 되어 있어 독해가 힘들었던 세계문학전집을 이따금  권씩 꺼내 읽어야만 했다. 그래도 독서는  즐거웠다. 좁은 개천에 살다가 한강 정도 나온 물고기의 심정으로 고등학생이  나는 열심히 교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빌려 읽었다.


  그때 읽은 책 중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밌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책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주인공 브리짓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해주는 남자, 마크 다아시는 고등학생의 눈에 완벽한 남자였다. 하필이면 직업도 왜 변호사인지.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이 반영되어 한동안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면 마크 다아시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며 혼자 펼친 망상은 몇 년 후 매서운 현실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편들까지 다 읽어 내린 나는 더 이상 읽을 게 없어지자 마크 다아시의 모티브가 된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던 고전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기로 결심했다. 책 한 권 읽는데 결심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등장하는 까닭은 어린 시절 저 세상 번역 세계문학전집의 영향으로 고전이란 대부분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이 내 머릿속에 있어서다.


  

c. unsplash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얼굴은 예쁘지만 집안은 한미한 엘리자베스와 지위도 높고 재력도 있는 다아시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신데렐라 비슷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과정은 섬세한 감정이 오가고, 불꽃같은 오해가 부딪힌다.


 시작은 이렇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파티에서 우연히 다아시가 자신에 대해 품평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다. 이후 다아시와 가까운 사이었다고 주장하는 위컴의 부정적인 첨언과,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과 다아시의 친구 빙리의 사랑을 방해했다는 오해도 더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생뚱맞게도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사랑 고백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잘난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너는 당연히 나를 받아주겠지'라는 오만한 태도가 보이는, 흡사 선언 같기도 한 자기 고백이었다.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 흐름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엘리자베스는 화를 내며 다아시를 뻥 차 버리고, 다아시는 곧 엘리자베스가 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해명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둘 사이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소설에서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둘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은 서사가 진행되며 서서히 풀린다. 언니 제인을 제외하고 엘리자베스의 나머지 가족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던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가족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돕는다. 다아시의 오만한 태도가 엘리자베스로 인해 변했다는 사실은, 엘리자베스의 외삼촌의 신분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다아시의 행동으로 증명된다.


  엘리자베스 또한 다아시에 대한 오해를 하나씩 풀게 된다. 다아시는 위컴 같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아시 가문의 재산을 노리는 몹쓸 남자로부터 어린 여동생을 지키고 싶은 다정한 오빠였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언니에게 가지고 있던 오해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실수를 돌이키려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오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품성에 앞서 돈도 지위도 모든 걸 다 가진 다아시가 별 볼일 없는 조건의 엘리자베스를 사람 하나만 보고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할리퀸 로맨스 서사와 결말이 마음에 든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이 진부한 연애 소설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건 깊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번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면서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가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불필요한 오해가 쌓여 관계를 망가지게 두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때로는 자존심이 상해서 혹은 오히려 관계가 더 틀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솔직함이라는 덕목을 우리와 멀어지게 만든다.


  또한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반발심에서 나온 충동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엘리자베스를 모욕하는 다아시의 대고모에게 엘리자베스는 용기 있게 반박하며 다아시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용기는 다아시가 한 번의 거절을 극복하고 다시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할 수 있는 또 다른 용기를 불러왔다.


  처음에는 오만과 편견으로 서로를 상처 입혔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보여준 오해를 인정하는 용기는 두고두고 이 소설을 계속 보게 만들고 다른 이에게도 추천하는 이유다.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 대입해보아도 인간 군상의 모양새는 크게 다를 바 없어서 이 소설을 고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줄거리가 재밌고 등장인물들이 다양하고 특색 있으며 다 읽은 후에 여운이 남으니 내가 좋아하는 책은 『오만과 편견』이라며 자신 있게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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