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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13. 2022

Pachinko (이민진)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은 분들은 읽지 말아 주세요. 일명 스포주의※


작가인 이민진이 어느 정도 한국말을 구사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 간단한 인사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해서 놀란 기억이 있다. 조사에 취재를 거듭해 탄생한 책이라 그런지 한국 정서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쓴 책 같았다. 그래서 놀랐던 것 같다. 파친코를 처음 접했을 때, 책의 두께에 놀라고 (한국어 버전은 1, 2권으로 나뉘었다) 두께와 달리 책이 무척 가벼워서 놀랐고 (페이퍼백은 책이 진짜 가볍다. 대체 비법이?) 두께와 달리 책이 술술 읽혀서 놀랐다. 총 세 번 놀랐네.


4세대를 아우르는 소설이다. 진정한 family saga novel인데, 작가가 이 책을 완성하고 얼마나 뿌듯했을지 모습이 그려진다. 위키에서 읽은 듯한데, 원래 이민진 작가는 4세대인 백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고 했지만 오사카에서 자이니치 인터뷰 도중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들에 대해 들으며 주인공을 선자로 변경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는 women's suffer등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4세대를 어우르는 소설이지만 캐릭터 한 명 한 명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캐릭터는 노아였다. 친부가 아닌 이삭의 성품을 누구보다 닮았고, 평범한 일본인이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노아. 작가는 노아와 모자수(모세)의 반대되는 성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생각해 보면 노아는 유년기에 이삭의 모습을 보면서 컸고, 모자수는 한수를 (종종) 보면서 컸기 때문에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달랐던 거 아닌가 싶다. 노아의 자살은 미국에서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으로 손꼽혔는데, 책을 끝까지 읽고 노아 자살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친절하게도 독자에게 꾸준히 설명해 주고 있더라. 예를 들면, 선자와 노아의 대화라든지, 아니면 솔로몬과 카즈의 대화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Noa: No one knows I’m Korean. Not one person. (…) My wife doesn’t know. Her mother would never tolerate it. My own children don’t know, and I will not tell them. My boss would fire me. He doesn’t employ foreigners. Umma, no one can know-”

Sunja: Is it so terrible to be Korean? 

Noa: It is terrible to be me. 




Kazu: Japan is fucked because there is no more war, and in peacetime everyone actually wants to be mediocre and is terrified of being different. The other thing is that the elite Japanese want to be English and white. That’s pathetic, delusional, and merits another discussion entirely. (…) 


His uncle Noa, whom he’d never met, had apparently killed himself because he wanted to be Japanese and normal. 


노아의 자살은 어찌 보면 정체성과도 맞물려 있는 듯하다. 신분을 버리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노아에게 갑작스러운 엄마의 방문은 본인이 '한국인'임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증거가 될 거고 위협적이었을 거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을 거다. 어린 시절 Ikaino에서 한국인이라 멸시받았던 모든 것들이 생각나 다시 그 때로 돌아갈까 봐 벼랑 끝에서 그런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노아는 당시 자살을 유전적 정신질환으로 여겼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했을 때(책에 나옴), 아내와 남겨진 자식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셈이라 노아가 안쓰러우면서도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책을 다 읽은 시점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스티븐 연에 대한 영상을 봤다. 영상 초반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한국인입니까, 아니면 미국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통계 수치가 나왔는데  대다수의 재미교포가 '나는 재미교포 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재미교포가 청소년기에 국적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는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파친코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모든 내용은 '파친코'라는 장소로 귀결된다. 와세다 대학교를 다녔던 노아가 일할 수 있는 장소도 파친코였고, 고등학교 중퇴였던 모자수도 파친코에서 일을 했고,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소위 말하면 고학력자이자 '가방끈 무지 긴 배운 놈'인 솔로몬 역시 마지막에 발붙일 장소로 파친코를 택한다. 파친코는 결국 당시 일본과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자이니치들이 아무리 공부하고 발버둥 쳐도 일제강점기 잔재라는 쇠사슬 속에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음을 작가가 은연중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책을 읽고 몇 주 뒤에 우연히 북한 수용소에 대한 애니메이션 '리멤버 미'를 보았다. 파친코가 역사를 관통하는 책이니만큼, 한국 독립 이후 북한으로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리멤버 미의 주인공 아버지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갔고 파친코에서 일하다 북한에 대한 입발린 좋은 얘기를 듣고 북으로 간 것으로 묘사된다. 이 부분에서 괜스레 김창호가 생각나는 건 뭘까. 김창호도 한국 독립 이후 비슷한 시기에 북한으로 갔고, 그 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양진이 죽기 전 김창호도 북한에서 죽었을 거라는 말을 남긴 거 보면 작가가 어느 정도 이 시대 실존했던 이야기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57087


개인적으로 중간에 좀 쓸데없는 인물들이 나와서 뭥미 했는데.. 예를 들어 하나짱은 왜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의도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자네 가족과 일본인 가족을 놓고 볼 때 대부분 '선'을 행하거나 '화합'을 위해 다가가는 쪽을 한국인으로 묘사해서 일부러 이렇게 표현한 건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면, 에이즈에 걸린 하나짱에게 가족애와 사랑을 상기시키는 것도 솔로몬과 모자수였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각자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다양해서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을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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