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운 행복 (하)

by 책여사


중학교 3학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낯선 공기를 기억하시나요? 죽음의 이유를 쉬쉬하느라 더 어두워진 얼굴의 그늘들, 거짓말로 애써 둘러대느라 더 피곤해 보였던 어른들의 굽은 뒷모습. 그때의 우리는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빠의 죽음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날 밤을 수천 번 상상했습니다. 10월의 늦은 밤, 한 남자가 가족들과 숱하게 지나곤 했던 대교를 향해 홀로 차를 몰았습니다. 어두운 밤 덜컹거리는 스타렉스. 그보다 더 덜컹거렸을 한 사람.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커다란, 수많은 가로등. 누런 가로등 불빛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그의 눈동자에 어려있던 삶을 향한 무언가도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을까요? 어쩌면 그 길이 끝나지 않길 바라진 않았을까요?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났다면 어땠을까요? 자의 아닌 타의로 생이 위협받았다면 스스로 버리려던 그 생, 지키고 싶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래요. 우리의 때늦은 바람은 과거의 한 남자를 멈추지 못합니다. 대교 중앙에 이르러 차를 세우고 뒷좌석을 바라봅니다. 그의 딸과 아들이 앉던 자리에 이제는 거친 밧줄과 무거운 돌덩이가 있습니다. 자신을 살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성공적인 죽음을 위해 돌덩이를 밧줄로 꽉 묶는 꼼꼼한 손. 더 젊었던 시절에 공장에서 일하다 잘려나간 왼손 무명지 첫마디 자리를 딸아이가 바라볼 때면,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들려주던 남자. 하루 끝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든 남매를 매만지던 거칠지만 다정한 손. 그 손으로 밧줄 반대쪽 끝에 기어코 자신의 발목을 맸습니다. 차 문을 열자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꺼풀이 감깁니다. 그 눈꺼풀의 깜빡임이 가느다란 생의 의지였다는 걸 왜 그는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자신과 연결된 무거운 돌을 겨우겨우 안고 난간에 기대 선 채 검은 강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란 이렇게도 지난하고 번거로웠을 겁니다. 단칼에 죽을 수가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데 성공한 남자의 눈엔 자신을 향한 살의가 번득였을까요? 그 안엔 무엇이 있었을까요.



다음날 이른 새벽 남자의 시신과 함께 건져진 밧줄과 돌덩이. 그런 건 도대체 어디에서 구한 걸까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았을까요? 어쩌면 죽음보다 더 죽을 맛이었을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평범과 행복을 연기했을 그를 왜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을까요.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남은 자들의 가슴엔 그를 죽인 돌만큼 큰 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던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자. 그런 그들과 함께라면 뭐든 좋았던 어린 남매. 타이어가 마치 내 발이라도 되는 듯 울퉁불퉁한 돌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산길을 지나 붕어가 잘 잡힌다는 저수지에 비스듬히 차를 세웁니다. 트렁크에서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내리고 돗자리를 까는 어른들 뒤로 검푸른 저수지가 펼쳐져 있었죠. 수심을 알 수 없는 물을 바라보며 어린 당신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내 남자와 여자의 실루엣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윤슬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곧 가스버너 위에선 지글지글 기름진 냉동 삼겹살이 구워지고 남매는 용돈을 주겠다는 어른들의 성화에 온몸 비틀기를 해가며 노래도 한 자락씩 뽑아봅니다.



한 차례 시끌벅적한 오후가 지나고 여자와 남매는 기울어진 차 안에서 잠을 청합니다. 낚시터 주변에서 잠을 자는 날이면 어린 당신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마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날도 그 묘하게 짜릿하고 무서운 꿈을 꾸다 갑자기 밀려오는 현실의 요의에 놀라 벌떡 잠에서 깼습니다. 어느새 검게 어두워진 물가, 큰 소리를 내면 붕어가 놀라 도망간다고 이제부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남자의 말을 잊지 않은 당신은 터질 것 같은 오줌을 꾹 참아봅니다. 스타렉스의 무거운 뒷문을 힘주어 조용히 여는 데 성공하자, 밀려오던 요의도 잠시 잊고 뿌듯한 마음이 됩니다.



낮에도 몇 차례 여자와 함께 갔던 풀 속 양지바른 곳에 벌린 무릎을 끓어안듯 앉고 조심조심 하얀 엉덩이를 내놓습니다. 낮은 풀사이로 해방되듯 떨어지는 오줌발 소리를 들으며 은은한 만족감이 입니다. 맨 엉덩이로 따끈하게 올라오는 온기를 잠시 즐기며 정면을 응시하는 당신의 시선 끝엔 남자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낚싯대를 드리워 두고 검은 수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야광찌를 바라보는 남자. 뾰족한 검은 풀숲에서도 안전하다는 느낌과 비로소 해소된 요의는 행복의 생생한 이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파란 몸통에 하얀 뚜껑이 달린 커다란 아이스박스 속에는 커다란 붕어들이 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남매는 ‘아빠 최고-!’를 외치고 여자는 아이스박스에 비린내가 배면 어쩌려고 또 이랬냐고 핀잔을 주지만 남자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남매와 눈 맞춤을 한 뒤 허리를 곧게 펴고 뒷짐을 집니다. 이어지는 남자의 ‘어허~이’ 소리에 온 가족이 벙긋벙긋 웃고 맙니다.



그날 저녁에는 여자가 솜씨 좋게 손질해 끓여낸 칼칼한 매운탕을 먹게 되겠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 가득하던 물 비린내. 그 비린내 나는 행복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할 먼 곳에서 남자는 이제 행복할까요?



남자의 그 번거로운 혼자만의 행복이 우리는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글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발행됩니다.
이전 글 '번거로운 행복 (상)'
> 보러 가기
이전 글 '내 사랑은 쌩쌩 꼬리를 흔든다 (상)'
> 보러 가기
이전 글 '코평수와 광대 (상)'
> 보러 가기


작가의 이전글번거로운 행복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