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30915~230916)
| 첫 문장: 우주는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p.11)
(23/09/16) 아홉 살의 우주부터 스물일곱 살의 우주까지, 우주의 삶의 일부를 짧은 단편 영화로 엿본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관계를 ‘관찰’하고 ‘학습’해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뭔가를 관찰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주는 자신에겐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데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려워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야 했다. 그렇지만 열여덟에 만난, 그냥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같이 있기만 해도 되는 아이, 선미. 그만 바래다줘도 된다고 한 후에도 버스 정류장에 먼저 도착해 자신을 기다리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우주가 먼저 버스에 오르는 것을 정류장에서 바라보는 선미. 다시 만난 그들의 관계는 바뀌어 이제는 우주가 선미의 방을 꾸며주고, 선미를 돕고, 선미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우주와 선미 모두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달랐고, 그렇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했을지라도 결국 언제가 됐든 둘의 관계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평생을 함께 다닌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챈 순간처럼 스산해졌다. 우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랬다. (p.82)
열여덟부터 스물일곱.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우주와 선미. 우주는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낯설지만 익숙하다는 느낌, 그리고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장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이라는 것이 잔인한 말일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이별도 하나의 결실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별도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같이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헤어짐은 늘 아프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든 겪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충분히 앓더라도 잘 견디고 마무리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티저북이 소설의 제2부 「관찰의 끝」을 담고 있다고 해서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티저북 인물소개에 언급됐던 인물들이 깜짝 선물처럼 등장해서 더 흥미로웠다.
우주는 미술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 이들이 말하고 싶으면 말할 수 있게 기다리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도록 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것과, 때로는 곁에 그냥 서 있어 주는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느슨하지만 다정한 관계’라는 설명이 딱 맞는다고 느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쩌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옆돌기를 하더라도 놀라거나 박수를 치거나 눈썹을 찡그리지 않고, 나무나 물을 볼 때처럼 옆돌기를 오직 옆돌기로 볼 수 (p.94)’ 있지 않을까. 화영, 우주, 보라, 정수 네 명의 인물들이 소설을 통해 보여 줄 ‘느슨하지만 다정한 관계’가 무엇일지 정말 기대된다.
(*출판사 티저북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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