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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27. 2023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난다 (231125~231226)



*별점: 4.5

*한줄평: 겨울 내내 아껴 읽고 싶었던 글들

*키워드: 산문 | 이야기 | 당신 | 기억 | 삶 | 음식 | 물건 | 사랑 | 밤 | 시선

*추천: 시인의 ‘먹고 사고 사랑하는 일’이 궁금한 사람


달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 삶은 없어. 달고도 쓴 삶이 있을 뿐이지.
/ 「시칠리아에서 시나몬 스틱까지의 삶」 (p.28)


*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이 책은 겨울에 읽고 싶어서 남겨두었다가 겨울 냄새가 날 무렵 꺼내 들었다. 한 번에 다 읽을 생각이었는데, 글이 좋아서 아끼고 아껴 읽다 보니 완독까지 오래 걸렸다.


* 1부에서는 음식, 2부에서는 물건에 얽힌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3부에서는 좀 더 내밀한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엄마에 관한 글들. ‘엄마’라는 단어는 이유 없이 자주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보통 아기가 처음 내뱉는 단어는 엄마. 사람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연결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도 엄마. 영상이나 음성 녹음을 자주자주 해둬야겠다.


*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읽을 때 또 다른 시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도 참 좋았지만,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사랑을 말하는 산문들도 참 좋아서 다른 산문집도 찾아 읽어 보려고 한다. 여름에 읽으려고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아껴두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여름을 싫어하는 나도 조금은 여름이 기다려진다. [23/12/26]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을 읽는 밤—안희연 시인> 행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하지만 그날 머그컵 위로 비쭉 솟아오른 시나몬 스틱은 말했다. 양손에 쥘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은 아니란다. 너는 시나몬 스틱의 삶을 위해 시칠리아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시나몬 스틱에서부터 시칠리아까지의 스펙트럼을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건 얼마나 드넓고 풍성한 시간이니.

/ 「시칠리아에서 시나몬 스틱까지의 삶」 (p.30-31)


| 나는 헤맴에 최선인 사람이고 싶다. 현실은 빈약한데 이상은 턱없이 높아서가 아니라,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까다로운 성미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 「신발에 맞는 발을 고르러 나간 언니는 어떻게 되었나」 (p.81)


| 그것은 통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명은 지구에, 다른 한 명은 화성에 있는 두 사람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 내일 로켓을 타고 당신에게 가겠다, 내 목소리 듣고 있냐, 보고 싶고 사랑한다. 이쪽의 고백은 멀고먼 우주를 가로질러 저쪽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말들은 우주의 공허에 잡아먹히고 유성우에 부딪혀 부서지고 흩어진다. 끝까지 살아남은 단어는 오직 이것이었다. ······사랑······

/ 「등뼈를 상상하는 버릇」 (p.136-137)


| 겨울은 오고 있다. 올겨울은 어떻게 쓰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사실은 겨울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언젠가 마음이 동해 내 손으로 직접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날도 올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내가 내 몫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게 된다면 거기 아무것도 매달지 않으리라. 그저 나무가 오롯이 나무일 수 있게. 사랑이 그저 사랑일 수 있게.

/ 「그 겨울의 끝」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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