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는 넋이 나간 듯 했다. 백성들의 함성이 또다시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것은 기쁨의 함성이었다.
다시는 달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백성들은 눈앞에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았다. 백성들은 눈을 씻고 또 씻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로뿐 아니라 삼한의 모든 백성들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와 만세를 불렀다. 누군가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누군가는 가족을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몇 시간 후, 하늘이 두터운 비구름으로 덮였다. 새 달은 비구름 뒤로 비켜서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무와 꽃들이 살아나고, 개울물이 다시 흐르고, 논밭의 곡식들이 고개를 들었다. 비는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내렸다.
비가 그친 후 새 달이 다시 빛을 비추었다. 꽃잎과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 속으로 달빛이 스며들자 사람들은 그 빗방울을 마셨다. 빗방울과 함께 달빛이 온 몸에 퍼지자 사람들은 기운이 솟았다. 전염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병을 이길 힘을 얻었다. 논밭의 곡식은 싱싱하게 자랐다. 도적떼가 되어 떠돌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고을마다 잔치가 벌어졌다. 기쁨에 겨운 백성들은 며칠이고 잔치를 이어나갔다. 곳간은 비어 있었지만, 산과 들에서 먹을 것을 구했다.
진한은 점점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갔다. 백성들의 마음은 다시 달빛과 이어져 평화가 깃들고, 슬픔과 화는 씻겨나갔다. 숲과 강은 생명들로 넘치고, 들판은 풍성해졌다. 백성들은 행복을 누리면서도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새 달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은 애틋하고도 깊었다. 달못에 대한 사랑도 여전했다. 새 달도 예전의 달처럼 달못에 내려와 쉬는 것을 좋아했다. 달못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백성들 가슴 속에는 하나 둘 저마다 자그마한 달이 생겨났다. 백성들의 생명력은 달의 생명력과 다시금 단단히 이어지고 있었다.
새 달이 떠오르고 아로 이사금이 사라진 그날 밤, 소국의 무사들은 대낮처럼 환한 달빛 아래 말을 달려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날 밤의 일을 보고받은 군장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곧장 사로국으로 향했다. 이사금이 사라진 궁궐에는 대등들이 모여 앞날을 의논하고 있었고, 소국의 군장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군장들은 사로국의 대등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조문국 신지 금아간이 나섰다.
“우리 군장들은 이미 죽현 님을 새 이사금으로 정했습니다. 사로국의 잘못으로 진한 전체가 오랜 세월 크나큰 시련을 당했으니, 오늘 여기에 모이신 대등들도 그 책임을 다하는 뜻에서 우리 군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시오.”
사로국의 대등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사로국의 왕족과 귀족들 또한 새 이사금으로 죽현을 입에 올리고 있던 터였다. 그것은 백성들의 뜻이기도 했다. 군장들과 대등들은 만장일치로 죽현을 새 이사금으로 추대하였다.
죽현은 자신이 왕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사로의 왕족들은 선대왕 조분 이사금의 딸 광명랑을 왕비로 추대해 그의 즉위를 이끌었다.
열흘 후 사로의 궁궐에서는 혼인식과 즉위식이 함께 이루어졌다. 나라 형편이 오랫동안 어려웠으므로 죽현은 화려한 옷과 음식을 금하고 검소하게 의식을 치렀다. 즉위식에는 변한 낙노국에 망명해있던 이서국 신지 지휴간도 돌아와 참석하였다.
의식과 연회가 끝나고 군장들과 귀족들이 모두 돌아간 후, 죽현은 양질과 양적을 불렀다.
“아로의 행방을 알아보았느냐?”
죽현이 물었다.
“진한의 촌락 곳곳에 아이들을 보내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양질이 대답했다. 죽현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진한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한 해가 지나자, 15년간이나 드리웠던 끔찍한 어둠은 흔적도 없이 물러가버렸다. 죽현은 높은 덕으로 사로국을 다스렸고, 백성들은 왕을 믿고 사랑했다. 세월은 잔잔한 강물처럼 평화롭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