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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투리 Jul 13. 2024

아버지 선물을 샀다가 어머니에게 맞은 기억

그리고 아버지한테 또 맞았었던...


딸아이가 뽀로로 색종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뽀로로 캐릭터를 접어서 만들 수도 있고 또 다양한 양면 색종이도 있더라고요. 종이 접기가 서투른 아이는 저에게 접어달라고 합니다. 



어떤 거 만들어줄까?
뽀로로! 



뽀로로가 어린이의 대통령이라는 건 들어봤지만 두 돌도 안 된 아이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뽀로로, 루피, 패티 등등 캐릭터를 하나씩 접어주고 나니 무지 색종이들을 잔뜩 구기더라고요. 반듯한 색종이가 구겨지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색종이까지 아낄 정도로 궁핍하진 않은데...'


그게 아니면.. 어릴 적 아픈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을까요. 수업에 색종이가 필요해서 어머니에게 용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잔돈이 없어서 만원을 주셨어요. 지금도 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당시에 만원이면...(너무 나이 든 게 티 나니 그만하겠습니다). 


큰돈이 생겨서 흥분을 했던 탓인지 필요했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샀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일반 색종이보다 색과 수량이 더 많았고 케이스에 담겨있는 고급 색종이였어요. 굳이 사본 적 없는 제일 비싼 색종이를 고르고는 남은 돈으로 아버지 생신 선물인 면도기를 샀습니다. 



그땐 제 돈도 아닌데 왜 스스로 뿌듯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만원을 다 쓰지는 않고 조금은 남겼지만 돈을 헤프게 썼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처음으로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딱 10대를 맞았어요. 마음 약하신 어머니의 회초리라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마지막 한 대에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아픔을 완화시키고 있는데.. 



아버지가 오셨어요..

왜 그날 두 분은 같이 오시지 않았을까요.. 

저를 다시 부르더군요.. 



그리고 매를 드셨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은 더 참았을 텐데 처음 한 대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픔, 억울함, 서운함 다양한 감정이 섞인 눈물을 한 없이 쏟아냈습니다. 



부모님은 그 사건을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 

애석하게도 말이죠... 












'내 돈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위한 선물도 샀는데... 때리다니 너무 하셨어'



이 비운의 사건은 최근까지도 억울하고 속상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 근거를 뒷받침하는 포인트는 소비목록에 아버지 생신 선물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니 결과가 조금 바뀌었는데요. 맞을만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잘못들을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큰돈이 손에 쥐어지자마자 가치 감각이 무너졌다. 

- 필요하지 않은 비싼 색종이를 샀다. 

- 내 돈이었으면 못 샀을 아니 안 샀을 감정적인 소비를 했다. 

- 조금의 잔돈이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갑자기 생각지 못한 돈이 생기면 다들 그러지 않나요? 성과급이나 연말정산 같은 거 말이에요. 큰돈이 들어오면 돈의 감각이 상실되면서 평소 사기 어려웠던 물건을 사거나 불필요한 물건을 사게 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지만 사실 그 돈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물건들을 사게 되죠.








정말 필요했던 건 100원짜리 색종이였을 뿐인데... 

과거의 내가 100원짜리 색종이만 사왔더라면... 

오늘의 나는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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