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잔혹 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토끼가 잠든 사이 거북이가 결승점에 먼저 도달’하는 것이죠?
저는 왜인지 이 이야기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끼가 아무리 잠을 자더라도 거북이가 어떻게 이기냐는 게 제 논리인데요. 과연 내가 거북이라면 경주를 시작조차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이 불공정한 시합을 누가 하겠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거북이로 빙의하며 어린 시절 부자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제 자신이 떠올라 잔혹한 현실버전의 토끼와 거북이 시나리오를 써보았습니다.
거북이는 이 경기가 평등하지 않다며 비난한다.
그리고... 자신이 질 것을 직감하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해 버린다.
거북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경주는 이미 시작된 상태고 토끼는 앞서 달리고 있다.
거북이 : '가볍고 빠르면서도 먼저 출발을 하다니 치사한 녀석...'
거북이는 그 뒤를 어쩔 수 없이 털레털레 따른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저 먼발치에서 잠든 토끼가 보인다.
비겁한 토끼가 못마땅했던 거북이지만 한껏 여유를 부리며 잠든 토끼가 부러웠는지 잠에 든다.
너무 기분 좋은 낮잠이었다. 거북이는 이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깊이 잠든 사이 토끼는 먼저 일어나 출발한다.
거북이는 토끼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지만 무거운 등껍질을 가졌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곤 환경 탓을 하는 거예요. 달라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포기하는 것이죠.
사실 거북이가 아예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진심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일 뿐...
거북이는 토끼가 원망스럽지만 한편으론 토끼가 많이 부럽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부리는 여유를 따라 하죠. 토끼처럼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토끼한테 그 여유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똑같은 낮잠의 여유가 느린 거북이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승부는 고사하고 결승선에 한 참을 더 늦을 수밖에요...
아니, 평생 도달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인생이란 승낙 유무와 상관없이 시작되는 레이스와 같다.
사실 이 레이스의 목표는 각자의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지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게임이 아니다.
낮잠은 누군가에겐 여유지만 누군가에겐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드는 달콤한 독과 같은 허영과 사치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