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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Jan 21. 2019

내가 산 그 가격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


   거의 대부분의 상품들은 포장을 벗겨내는 순간 곧바로 중고가 된다. 자동차의 경우 공장에서 출고가 되어 단 몇 미터만 움직이더라도 중고차가 된다. 제품마다 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새 제품들은 중고가 되는 순간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합리적인 경제 현상이 아니다. 정상적인 계산대로라면 포장지가 사라진 새 제품의 가치는 포장지의 가격만 제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가격 결정 현상은 소비의 다운사이징, 즉 절약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된다.   

  

   나에게 경제적 자유를 안겨준 일등 공신은 ‘책’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랑하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들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아낌없이 전해준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면 30억 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돈을 치러야 하는 워런 버핏의 투자 노하우도 만 원 안팎이면 전수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중고 서점을 통해 구입한다면 그 비용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책은 어차피 처음부터 포장지도 없었다. 게다가 중고 서점에서 팔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거의 새 책과도 다름없는 깨끗한 상태여야 할 것이다. 책이라는 상품의 가치는 물리적인 종이의 재질이나 상태가 아님을 감안한다면 새 책과 중고 책의 가격 차이를 합리적으로 계산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절대로 옷을 사 입지 않으면서도 TV에 출연한 연예인이 구제 샵에서 산 빈티지 옷은 스웩이 넘쳐 보인다. 이것이 바로 새 제품만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중고 제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소비 습관이 좋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매한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다.     

   중고 상품은 비합리적인 가격 결정으로 인해 실제 가치보다 평가절하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300만 원짜리 새 냉장고는 감가상각 기준으로 월 2만 5천 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중고로 산 30만 원짜리 중고 냉장고는 월 2,500원의 비용이면 충분하다. 중고 냉장고는 5년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OK! 인정! 그렇다 하더라도 5천 원이면 된다. 소비의 다운사이징은 새 냉장고 대신 중고 냉장고를 사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버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는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모아 놓은 1억 원은 10년 후에 1억 5천만 원이 될 수도, 2억 원이 될 수도 있는 잠재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10년 후의 1억 원은 그냥 1억 원일뿐이다. 돈의 잠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모아야 하며, 이를 위해 바로 지금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소비’인 것이다.   

  

   재화의 가격 결정 요인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합리적 소비의 시작이다. 최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 바로 이전 모델의 스마트폰은 가격이 하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원하기 때문이다. 최신형 스마트폰과 바로 이전 모델의 기능적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능적 차이와 가격 차이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우에도 새 제품과 중고 제품의 차이처럼 비합리적 가격 결정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가격 비교 사이트를 이용해 최저가를 검색하고, 소셜 커머스를 활용해 외식을 하고, 해외 직구를 통해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행위들은 모두 합리적 소비 행위라 할 수 있다. 내가 얘기하는 합리적 소비란 무조건 아끼고 싸구려 제품만 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시쳇말로 ‘가성비 갑’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 습관’ 이라기보다는 ‘소비 능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돈을 잘 버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투자를 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소비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소비 능력’을 갖추는 것은 다른 경제적 능력들에 비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앞서 설명했듯 소비는 스스로의 결정과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향상될 수 있는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결정하기 전에 ‘그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소비 능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아끼고 절약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내 아내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불을 끄는 것을 깜빡하고 나온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는 엄마나 그 잔소리에 투덜대며 발걸음을 돌려 불을 꺼야 하는 아이들이나 스트레스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러한 스트레스는 절약에 있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화장실 조명은 소비전력 20W짜리 LED 조명이다. 이 조명의 사용에 따른 비용을 전기 요금으로 환산해 보면 월 5만 원 정도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발생되는 가정을 기준으로 시간당 약 5원 정도라는 계산이 산출된다. 아내에게 이 계산 결과를 알려 주고 난 후부터 아이들이 화장실을 쓰고 난 다음에 들을 수 있었던 잔소리가 사라졌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있어 5원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장실 조명 사용으로 촉발된 아내와 아이들의 전기 절약을 위한 스트레스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했다. 절약에도 기술과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작은 돈을 아껴야 큰돈도 아낄 수 있다.’라는 말은 잠시 잊어도 좋다. 작은 돈을 아끼기 위한 잦은 스트레스는 큰돈조차 아끼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소비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만이라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까?’를 한번쯤 스스로 되물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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