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는 ‘내 답’이다
몇 년 전부터 경제의 저성장이 대세적 현상으로 굳어지는 와중에 2020년 들어 코로나 19사태까지 발생했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해묵은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한 운에 기대지 않았으며 주위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본인 주도형 성공의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과 긍정적 사고 방식 및 희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런 ‘미담’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만 성공의 사연이란 그렇게 편집되기 마련임을 감안하더라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유사하게 전개되는 점이 조금은 눈에 걸렸다. 그토록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무일푼에 번듯한 학벌도 없고 집안 배경도 초라한데,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했으니 당신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액면 그대로 들었을 땐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말한 이들이 일류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않은 것은 분명 사실이며, 그들이 했던 각고의 노력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사실로 공인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말한 성공의 비결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행여 양쪽의 소통에 무슨 문제가 있었거나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세상사의 대부분은 결국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고 결정된다(사업이나 투자에서는 더욱 그렇다).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 탁월한 협상 능력,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사실 이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 등은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흔히 말하는 행운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들에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일본 출신의 메이저리거로 투타겸업의 신화를 써내려가는 오타니 쇼헤이가 평소 심판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한 결과 ‘오타니 스트라이크 존’이 생겼다는 일화는 성공에 있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실제로 본인 주도의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이런 실질적인 장점들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경매의 여왕이라 불리는 사람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숱한 과정에서 탁월한 상황대처 능력과 남다른 자신감, 긍정적인 사고 방식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렵게 성장하며 강한 생활력을 키웠고 나중에 실패하긴 했지만 중소 제조업체에서 탁월한 영업 실적을 올린 경력이 있었으며, 세입자 명도 과정에선 특유의 입담과 넉살로 무난히 사태를 해결하였다. 스마트 스토어의 신화를 쓴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송사에서 일하며 나름 세상사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익혔고 조리있는 언변을 갖추었다. 그리고 늘 타인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하며 공감 능력 또한 뛰어나 보였다. (화면상 이미지이지만) 전체적인 외모와 인상 역시 깔끔했다.
이런데도 정말 이들은 ‘맨손’으로 성공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다고 말한들 믿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여러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다시 말해 ‘내가 이렇게 했는데 당연히 다른 사람도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천차만별이어서 본인 입장에선 누구나 당연히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런 능력이나 성격적 요소가 다른 사람에겐 전혀 없을 수 있다.
설령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최대한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한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성공의 비결은 암묵적 지식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 등의 형식을 갖추어 표현될 수 없는, 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지식을 말한다. 알고 있기는 해도 말과 글만으로는 절대 타인에게 전달해 줄 수 없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설계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파운드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선진 업체의 노하우를 그저 문서 복사하듯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듣고 그대로 따라했는데 왜 안 되느냐고 불만 섞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모든 문제를 학교 교육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수업을 듣고 책으로 공부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학교 시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그마저도 조금 높은 수준의 시험엔 적용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상대방이 오랜 기간에 걸쳐 습득한 노하우를 한두번의 설명을 듣고 얻을 수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 교육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요약하자면 성공의 비결을 전달하는 쪽과 듣는 쪽 모두 각자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성공의 비결을 따라한다고 해도 그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 때문에 나름 서로의 역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성공의 비결을 주고 받는 사이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가 암묵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고려해 비결을 알려줄 의무는 없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이 최선을 다해 설명해 준다고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공 이야기를 세심히 읽어보고 경청하되 그대로 따라하기보단 그 중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참고하여 본인만의 비결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박지성(은퇴)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활동량이라는 본인 특유의 장점을 앞세워 불리한 신체 조건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물론 히딩크 등 지도자와의 궁합이라는 운도 따랐다). 본인의 장점에 집중하며 최고의 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지성의 사례에서 보듯이 성공에 있어 ‘정확성’보단 ‘적절성’의 승수 효과가 더욱 큰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성공 사례를 ‘정답’으로 맹신하기보단 그것을 토대로 ‘내 답’을 만드는 데 노력을 쏟아보자. 성공할 경우 보다 더 확실한 ‘필살기’를 장착하게 될 것이며,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남의 탓을 하며 답답해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성공이란 본질적으로 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자수성가’ 대신 ‘본인주도’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도 최대한 용어를 선별해 사용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