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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Oct 27. 2020

가을에 이별한 마왕

신해철 6주기에 부쳐

 딱 이맘때의 찬바람과 큰 일교차 및 화창한 햇살을 하루에 모두 만날 수 있는 오늘같은 날이었다. 가을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추위라는 달갑지 않은 존재가 손님에서 동반자로 슬슬 영향력을 확대해 오는 계절의 갈림길에서 들었던 믿을 수 없는 소식.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특유의 개성있고 명석한, ‘뇌피셜’이지만 ‘오피셜’같은 독설을 뿜어내며 당당히 살아가던 그 사람의 마지막~~


 문득 그 날이 떠올라 구글링했는데 이맘때가 아니라 딱 오늘이었다니! 모든 죽음이 다 그러하겠지만 그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이유로 희생되다시피 우리 곁을 떠났다. 6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인지 세상은 야속하리만치 무덤덤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다만 드문드문 발견되는 뉴스 섹션의 ‘마왕 6주기’ 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들 덕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될 뿐이다.


27일 오후 8시 20분 가수 신해철이 사망했다. 지난 22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서울 아산병원 응급센터 중환실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닷새간 의식을 찾지 못하다 이 날 숨을 거뒀다 - 2014.10.27


떠나기 직전의 모습. 후덕해졌지만 대신 조금 더 따뜻해졌던 마왕





 넓고 거친 세상에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외쳤으며 과오는 있었을지언정 삶에 부끄럽지 않았던 남자. 무대에선 천재적인 재능을 아낌없이 발산하던 야생마였지만, 가족에겐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담아 바쳤던 다정한 가장. 개인적으로 그의 열성팬도 아니었고 그의 삶을 서사시로 쓸만한 필력도 없다. 게다가 세월은 흘렀고 예술과 음악의 트렌드도 몰라볼만큼 변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걸작들은 2020년 지금의 세상에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들을 쏟아내고 있고, 삶에서 진정 지키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곡들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울림을 느꼈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경탄하게 했던 대표적인 4곡을 소개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 - Myself 1991


https://youtu.be/HRlwPwqC-Y0


 현재 시점에서 1990년대 초반은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고 노력한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었으며 사람 간의 정이 살아있었던 시절로 기억된다. 하지만 20대 초반 청년 신해철은 이미 당시의 세상조차도 각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고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흘러간다면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들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전망좋은 직장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 큰 집, 빠른 차, 멋진 여자’에 밀려 ‘고흐와 니체가 삶을 처절히 불태워 얻으려고 했던 것들’이 경시되고 인간이 소외되는 비극을 안타까워했다. 조금도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슬플 때 맘껏 소리내 울지 못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꼈고,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의 소중함들을 지키고 싶어했다.

 

 안타깝게도 30년이 흐른 지금 인간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가 되어 세상에 나서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이 흐름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격언처럼 신해철의 우려섞인 예언은 점점 더 정확히 맞아들어가고 있고, 세상의 이전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주눅들고 물러서고 포기하는 모습을 마왕이 바라진 않을 것 같다. 그보다는 삶에 지친 스스로를 안아주고 밤새워 격려의 편지를 쓰며(요즘은 이런 걸 ‘힐링’이라고 한다지 아마?) 기운을 차리고 두려움없이 자신의 길을 당당히 나아가길 원하지 않을까?




Here I stand for you - 넥스트 싱글 1997


https://youtu.be/xdBXn_Hi51Y


Promise(약속), Devotion(헌신), Destiny(운명), Eternity(영원), & Love(사랑)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난 여전히 이 말들을 믿습니다. 영원히~~)


서른 줄에 접어든 신해철이 만난 세상은 훨씬 각박해졌고, 남녀 간의 사랑도 순수함이 많이 퇴색되었다. 진정으로 원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나다 보니 헤어짐도 쉽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독이 짙어지지만 그것 또한 새로운 익숙함이 되어 속절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신해철은 우직하게 운명의 인연을 믿고 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비워놓은 채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고행의 길을 택한다. 그렇다고 그저 넋을 놓고 하늘에서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거친 세상을 당당히 마주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시킨다. 다만 너무 늦지 말아달라는 소망을 미래의 누군가에게 띄워보내며~~


 더욱 감동적인 것은 신해철이 실제의 삶에서 이 순수한 다짐을 지켰고 사랑이 찾아온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할 때 만난 아내 윤원희의 암 발병 사실을 알고도 그저 지켜주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한다. 정성이 통한 탓인지 결국 아내는 완치되었고 두 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한다. 음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유분방했지만 사랑에서는 원칙주의자였던 신해철. 이 곡에서 표현한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는 현실의 본인 그 자체였다.



일상으로의 초대 - Crom’s Techno Works 1998


https://youtu.be/dAamUZUXpvY


여러 관계로부터 마음의 상처도 받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여전히 기대되는 일이며, 타성에 젖은 삶에 있어서 새로운 일탈이 될 수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그 기대가 긍정적이고 즐거운 방향으로 증폭되기 마련이며, 매일같이 특별한 일이 있을것만 같은 만화적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 역시 인간관계이며 든든하고도 충실한 일상이 뒷받침되어야 낭만적이고 솜털같은 일탈을 즐길 수 있다. 아쉽게도 겉으로 보기에는 일탈의 무게감이 훨씬 커보이고 일상은 ‘소소함’이라는 미명 하에 경시되는 측면이 있으며, 많은 연인들이 이러한 일상과 일탈의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해 안타까운 이별을 하곤 한다.


 하지만 신해철은 일상의 소소함이 갖는 묵직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란 산책, 독서, 사색과 같은 잔잔한 일상에 상대방을 자연스레 초대하여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믿음과 격려를 보내고 그것을 알아차린 후 포근히 미소짓는다.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무엇이든 해낼 것만 같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들고 다시 날이 밝으면 이 소중한 일상의 ‘특별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내게로 와달라며 소리치지만 그 함성이 부담스럽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 넥스트 4집 1997


https://youtu.be/a-AOd_ZfNaw



 대학 2학년 때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한 후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신해철은 아티스트로서 별다른 실패를 겪지 않았다. 탁월한 재능에 운까지 결합하여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념비적인 명곡들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수많은 도전이 있었고 발표되지 못하고 버려진 습작이 셀 수도 없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수많은 반대와 편견에 맞서 싸워왔을 것이다.


 이 곡은 그토록 힘들게 싸워온 자신을 비롯한 세상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분투하는 수많은 이들에 대한 격려이자 헌사이다. 포기하지 말고 앞만 보며 달려갈 것을 주문하고, 마음이 이끄는 바를 믿으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는 자를 무시하라는 명언을 시전한다. 아예 상대하지 말고 대꾸조차 하지 말라고, 아직 시간이 남아있음만 기억하라고 반복한다. 마치 농구 경기 4쿼터 막판 숨가쁜 승부 와중에 작전 타임을 불러 선수들을 격려하는 감독처럼 세상의 수많은 도전자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마지막 소년에 대한 격려에서 도전이야말로 세상을 바꾸어 온 원동력임을 말한다. 또한 먼저 세상을 알았던 자들의 희생이 조금씩 세상을 발전시켜 이토록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음을 기억하며 그들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입체적으로 연결된 모습, 그것이 바로 역사이다.









 신해철은 해박한 지식과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으며 특별히 사전에 정해진 포맷이 없어도 자유롭고 풍성하게 대화의 테이블을 채울 능력이 있었고,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다소 민감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본인의 주장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과격한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했으며,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또다른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음악이 아닌 사상과 식견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였으며, 대중에게 보다 친숙한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서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던 시점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그의 부재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세상은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의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여 그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뭔가 부족한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에 ‘프리미엄’스러운 모종의 영역을 개척했을지도 모른단 역사의 가정법이 머리를 맴돈다. 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다. 찬바람이 점점 파고드는 이 계절 하루쯤은 멈추어 그를 추억하고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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