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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ug 12. 2020

힘들어도, 아니 힘드니까 내 인생이다

20년의 무게를 감당한 담담함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그저 전진하면 되는데 자꾸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는 역설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늘 접한다. 미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완벽히 예측할 수 없기에 대비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2020년 ‘그 질병’과 역대급 장마 앞에 속출하는 피해를 생각해 보라). 그리하여 다가올 날엔 행복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허공에 흩어지고 만다. 그에 반해 과거는 기억 속에 살아있기에 떠올리기도 쉬운데다 흔히 아름답게 편집된다. “당신의 잊을 수 없는 시절(혹은 가장 의미있었던 시절 ,가장 기억나는 시절 등등)은 언제인가요?”로 시작되는 대화가 Never Ending Story로 흘러가고 ‘라떼는~~’이 사라지지 않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사는만큼 질문의 대답도 다양하다. 아무 걱정 없던 유년기,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시절, 첫 아이를 낳고 키우던 몇 년, 학문이나 취미에 푹 빠졌던 날들 등등. 넓게 보면 돌아오지 못할 날들 모두가 그 대상일 수도 있다.


과거만큼 편집에 제약이 없는 게 또 있을까? 그 시절의 우리 모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였다


 그런데 그 중 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외부적 여건이 좋지 못했으며 본인의 능력과 경험치도 다소 부족했지만, 강력한 Grit과 긍정이 뒷받침된 근성 등의 힘으로 앞만 보고 달리던 그런 시절이라 말하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인상적이게도 이 중에는 소위 말하는 성공의 경지에 오른(올랐던)사람들이 적지 않다. 풍족하고 자유로우며 거칠 것이 없었던, 그야말로 전성기를 제쳐두고 그토록 거칠었던 날들을 꼽은 것이다. 물론 결과가 좋으니 훗날에 와서는 모든 것이 그립고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만 있으면 건조해 보이니 물기 머금은 싱그러운 의미를 좀 부여하고 싶을 수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람이란 먹고 살만하면 으레 삶의 균형이란 이유를 들먹이며 뭐든 다 가지고 싶어하는 법이다.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약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본인의 삶에 대해서 솔직하기 때문이라면? 삶의 모든 순간이 시공간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그 역경의 시절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라면?  


 브랜드에 비해 (한국에서는)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Shoe Dog’은 주로 그렇게 좌충우돌했던 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기 전엔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 나이키를 상징하는 ‘뮤즈’들과 파티를 즐기고 날로 치솟는 브랜드 가치에 환호하는 창업자의 이야기라 생각했다(에필로그에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안드레 에거시, 르브론 제임스 등과 만난 이야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책에서 다룬 이야기의 대부분은 1962년에서 1980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나이키와 거의 동일시되는 마이클 조던은 1984년에야 NBA에 등장했다). 특별할 것 없었던, 그러나 불굴의 강인함을 지닌 포틀랜드의 시골 청년이 세상에 흔적을 남겨보겠다는 ‘미친 생각’을 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통 사람이 달리기를 하면 특이하다고 여겨졌고 미국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같은 건 없었던 그 시절, 나이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니츠카 타이거(오늘날의 아식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서 신발 판매를 시작한다. 사업을 시작하고도 상당 기간 생계를 위해 회계사를 병행했고, 사회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을 모아 당시의 기준으로는 무모한 도전을 해 나간다(물론 빌 바우어만 코치 같은 러닝화 전문가와 함께하기도 했다). 그러다 오니츠카 타이거 본사의 ‘갑질’에 못 견뎌 창업한 브랜드가 나이키이다(일부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 간의 ‘갑을 관계’는 그 때에도, 그 동네에도 있었던 듯 하다). 이런 휘황찬란한(?) 말로 못할 고생의 경험들로  자서전의 대부분을 채운 이유는 정말 그 20년을 가장 의미있게 여겨서일 수도 있고 또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성공이란 번듯하게 차려 입고 고상하게 대화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성공은 철저히 현실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그 무엇이다”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성공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가 크게 찌그러지는 시련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필 나이트를 비롯한 고난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이 실제로 정확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생의 각각 다른 시기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이다. 그에 따라 현재 걸어가고 있는 진로의 안위가 결정되고, 변화의 계기가 찾아오며, 기억하기도 싫은 ‘흑역사’에서도 미래를 위한 지혜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매 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필 나이트는 나이키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의 증인으로서 솔직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하루 이틀이 아닌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담담히 써내려갈 수 있지 않았을까?


농구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지만 적어도 강백호는 지금 이 순간과 여기를 피하진 않았다. 만화가 더 이어졌다면 미래에도 그랬을 것 같다


덧붙여 한 단계 위의 경지라면 훗날이 아닌 바로 그 순간에 현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당당히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4쿼터, 뒤집기 힘든 점수 차로 지고 있고 체력적으로도 고갈 직전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이 바로 내 영광의 순간’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때로는 본인에 대해 ‘적당히’ 모르는 순수함이 필요하다. 순수하면 인정하게 되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의 자신감만큼 깨끗하고 강한 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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