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경험의 깊이에서 나온다

by 서한나

28개월인 채니. 팔베개를 해야만 잠든다. 잠이 든 것 같아 팔을 빼면, 다시 깨서 팔베개라고 말하며 아우성. 팔이 아프다는 설명을 해도 납득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삼 주 지났나. 목부터 어깻죽지까지 통증이 심해져서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 크림을 매일 발랐다. 어느 정도까지는 소용이 있었으나, 그 이상부터는 잠시간 통증이 줄긴 해도 일시적일 뿐이었다.


집 앞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는 도수치료를 권했다. 도수치료 시간. 물리치료사는 이것저것 물었다.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건지 확인하려는 거 같았다. 나도 사실 팔베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팔베개를 해서 아이를 재운다는 말은 안 했다. 그냥 아프다고만 했지. 증상을 이야기하다가 팔베개 이야기가 나왔다. 물리치료사는 모든 것이 드디어 연결됐다는 듯 말했다. 팔베개를 하면 근육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어떤 통증이 유발되는지. 보기에 젊어 보여 총각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이고, 생활감 있는 질문들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길래 의아했다. 뭔데 이렇게 자세히 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알고 보니 10살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골격과 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부모에게 몸으로 치댈 때 어떤지 등을 이야기해주니 나도 이해가 갔다. 자기가 한 번은 아들이 자기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는데 숨이 안 쉬어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방어도 못했고. 그때 자기가 죽나 싶었다고 말했다. 나도 대꾸했다. 몸통 박치기하면 정말 아파요. 세 살인데도 이렇게 아픈데 정말 아팠겠어요. 아들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도수치료 내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다른 병원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았다. 도수치료 시작 전, 얼마 전 도수치료받은 이력과 이유, 현재 증상 등을 이야기했다. 도수치료가 시작됐다. 물리치료사는 나에게 말했다. 아기가 몇 개월이냐고. 내 대답을 들은 물리치료사는 아이가 정말 귀엽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때쯤이면 아이가 이렇다던데 맞나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몇 년 전이었다. 그 당시 미혼이었다. 유치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신규 아이를 맡아서 보호자와 전화를 했다. 담당이 되었다고.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난 후였다. 내가 일하면서 아이도 키우니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하며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물었다. 상대방은 약간 의아한 목소리로 톤이 달라져서 없다고 했다. 대화가 끊어졌고. 통화를 마쳤다. 아마 상대방은 내가 미혼이기도 하고, 겉도는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회사에서 강의할 때다. 이론을 알아야 실습을 할 수 있다. 이론을 뺄 수 없다. 매뉴얼에 대한 내용이라 딱딱하다. 수강생들 표정이 굳어있다. 이때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실수했던 경험, 느꼈던 생각, 어떻게 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강생들이 고개를 든다.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도 한다. 적극적인 경청자가 된다.


경험에서 말의 깊이가 나온다.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느냐. 듣거나 상상한 것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경험이 없다고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감대 형성이 달라질 수 있다. 공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겪은 만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