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이십분. 왼쪽 머리가 지끈거린다. 삼사일 째 계속되고 있는 편두통. 통증 크림을 손바닥에 한 줌 짰다. 목덜미, 어깨, 머리에 발라서 주물렀다. 켜뒀던 컴퓨터는 내버려뒀다. 도저히 글은 쓰지 못할 거 같아서. 안방으로 가서 누웠다.
네 시쯤 눈이 떠져 공부방에 있었다. 책 보고, 바인더도 정리하고, 글 쓰려고 메모했다. 블로그 포스팅하려다가 못하겠기에 일어났다.
침대로 갔더니 채니가 가로로 자고 있었다. 누울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채니를 바로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채니가 잠결에 엄마하고 부른다. 나도 대답을 하고 채니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더니 여덟시 사십분쯤. 채니 어린이집 가야 해서 준비하려고 했더니 똥을 싼다고 했다. 나만 씻고, 준비했다. 세탁기도 돌려두고. 아홉시가 됐다. 열시에 수업이 있다. 여전히 몸에 힘이 빠진다. 어깨도 무겁고, 두통도 가시지 않았다. 수업을 들을지 말지 고민이 됐다. 다음에 들을까.
채니는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변기에 앉는 게 싫은 모양이다. 표현도 정확하게 하는데, 변기에서 싸는 게 싫다고 하니 별수 없다. 볼일 보고 나서도 씻기까지 한참 걸린다. 아무리 빨리 씻어야 한다고 말해도, 노노 싫어라고 말하며 도망 다니기도 하고, 더 쌀 거라면서 피한다. 노노는 어디서 배운 건지. 말끝마다 노노 이러는데 가끔 듣고 있자면, 속이 끓는다. 제스처도 얄밉다. 검지만 편채로 허공에 왔다 갔다 하며 흔든다. 암튼, 채니를 보내고 나야 좀 쉬던지, 수업을 듣던지 내 일을 할 수 있는데. 갈 생각을 안 한다. 말은 못 하고 입만 꽉 다물었다. 그 사이 거실에 어질러 놓은 장난감 좀 치우려 했더니 자기 가지고 놀고 있는데 왜 치우냐며 나에게 도리어 큰 소리를 낸다. 아오.
씻지 않겠다는 채니를 안아서 화장실로 데려갔다. 안긴 채로 발버둥 친다. 안 씻는다며. 나는 안 씻으면 세균이 드글드글하게 된다고 말하며 채니를 달랬다. 막상 씻으면 좋아하는데, 그전까지가 오래 걸린다. 씻고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왔더니 아홉시 오십팔분.
노트북을 켰다. 오십구분이 됐다. 열시에 수업 시작인데. 공유 받은 줌 링크를 클릭했다. 선생님이 말하고 있다. 오프닝은 시작됐다. 켜놓은 채로 주방으로 갔다. 물을 한잔 마셨다. 공부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이렇게 수업이 있거나 내가 뭔가 해야 할 때는 미리 거실 에어컨 켜둔다. 공부방 문 근처 거실 바닥에 선풍기 두고 회전시킨다. 좀 있으면 시원해져서 괜찮다. 오늘은 그렇지 않다. 미리 해뒀는데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내가 밖에 다녀온 탓도 있을 테고, 비 오기 전이라 더 더운가 싶기도 했다. 선풍기 코드 뽑아서 공부방으로 가져왔다. 노트북 옆 내가 앉는 자리에 두고 켰다. 이제야 좀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땀이 식는다.
앉아서 수업 들었다. 이은대 선생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 같다. 분명 멀리 있는데, 가까이 있는 듯 귓가를 때리는 소리. 들으면서 필기도 했다.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중간중간 일어나기도 하고 괄사로 마사지도 하면서 수업 들었다. 수업이 끝났다.
점심시간. 밥은 먹어야 할 것 같고, 차리긴 싫었다. 나밖에 없으니 차릴 사람도 나뿐. 이모가 만들어준 더덕구이, 멸치볶음에 김 꺼내서 점심상을 차렸다. 짭조름한 김이 바삭 거리며 입안에서 소리 난다. 짠 게 들어가니 좀 먹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반 하나 데웠던 거 다 먹었다.
청소기 돌리고, 아침에 빨래해뒀던 게 다 되었길래 널었다. 건조대에 널려있던 마른 빨래는 갰다. 그리고 좀 누웠다. 두시에 정수기 아줌마 온다. 오늘 필터 가는 날이다. 아줌마가 와서 하는 동안 누워있기는 그러니까. 그전에 좀 누워있다가 정신 차릴 생각이었다.
아줌마가 왔고, 자기 할 일 했다. 나는 내 할 일 했다. 아침에 쓰지 못했던 블로그 일기 쓰고. 내일 FGI 참여하는 게 있어서 자료 검토했다.
지난주에 FGI 참여 연락받았다. 관련 내용 메일로 받기로 했다. 일주일 다 되어 가도록 메일이 없었다. 나에게 연락 줬던 박사님에게 연락했더니 본인도 못 받은 터였다. 알아보고 말해준다고 하길래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 글쓰기 수업 듣고 있을 때 자료가 메일로 왔다. 학교 측에서 행정착오가 있었다 했다. 수업 중에 사실 메일 열어봤다. 자료는 없었다. 참석자 명단뿐. 다시 연락할 힘도 없고, 누군가 발견하면 다시 오겠지 싶었다. 참석자가 여러 명이니까. 예상은 맞았다. 나에게 연락 줬던 박사님이 받아서 나에게 전달해 줬다.
정수기 필터도 갈았고, 나도 할 일이 끝났다. 채니를 데리러 갔다.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 터라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우산 없이 오갈 수 있다. 채니를 안고 우산까지 들기는 어렵다. 평소에는 일층 현관에서 왔다 갔다 한다. 채니는 내가 지하주차장으로 가야 한다고 하니까 왜 그러냐고 물었다. 같이 현관 앞에서 비 오는 것 쳐다봤다. 채니는 밖으로 가서 비를 맞자고 했다. 나는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면 홀딱 젖는다고 안된다고 했다. 채니와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집으로 왔다.
간식 챙겨줬다. 어제 빵집에서 사 온 산딸기 바게트. 곡물 바게트에 반을 갈라서 생크림과 산딸기 잼을 발라놓은 빵이다. 인기 메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사 먹어본 적 없다. 몇 년째 단골인 빵집. 어제 문 닫을 즘 가서인지 사려고 했던 식빵은 없었다. 소금 바게트, 산딸기 바게트, 카스텔라 같은 것만 남아있었다. 채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 역시나. 좋아한다. 채니는 양손에 빵을 쥐고 먹었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먹느라 바빴다. 가운데에 붉은 게 뭐냐고 해서 산딸기 잼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산딸기가 채니 입으로 쏙 들어왔다고. 웃음이 났다. 저게 맛있다는 표현이구나 싶었다. 거실 청소하면서 채니 장난감 바구니를 소파에 올려뒀다. 빵 먹다가 그걸 봤는지. 왜 소파에 바구니를 올려뒀냐고 물었다. 매트 닦느라 그랬다고 말해줬다. 궁금한 것이 많은 채니, 이얘기 저 얘기 할 때 답해주다 보니 남편이 왔다. 머리는 계속 지끈거리고 있었다.
남편에게 말하고,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남편이 오고서야 좀 쉴 수 있었다. 채니는 남편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갔냐고. 남편은 엄마가 좀 아파서 쉰 대라고 말했더니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남편이 식사 준비를 했다. 갈치를 구웠다. 채니는 남편 옆에서 갈치 굽는 거 보면서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게 방으로 들렸다. 그러다 채니가 의자에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있었나 보다. 그건 몰랐다. 남편이 내려주니 채니가 나에게 왔다.
엄마 밥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안 먹으면이라고. 채니는 아빠가 갈치 구웠잖아. 배고프잖아라고 말했다. 아빠가 구운 거 먹어야지라고 덧붙였다. 빨리 오라면서 내 손을 붙들어 같이 나가서 밥을 먹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채니 말에 일어나 나오니 밥이 들어갔다. 반 공기 정도 먹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마무리는 남편이 하기로 하고.
힘들고 피곤한 상황 가운데도 웃을 일이 있다.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사실 채니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잠을 푹 자기 어렵다. 출산하면서부터 수면패턴이 흐트러졌다. 밤 수유할 때는 수유해서. 지금은 자다가 나를 더듬기도 하고. 팔베개를 해야만 잠들고. 지금 두통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도 팔베개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주에 채니 방학으로 치료를 가지 못했던 이유도 크고.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라고 했다. 내 마음을 좀 가볍게 여기는 게 필요하리라. 모든 것에 채니 탓, 건강 탓, 날씨 탓할 수 없다. 괴로움 보다 즐거움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충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