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에서

by 서한나

FGI 참석하기로 예정된 날. 지난주에 연락이 와서 하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 오후 두시에 시작이다. 나가서 점심도 먹고, 근처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근처 맛집도 검색해 보고.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좋은 인근은 어디일지도 찾아봤다.

씻고, 채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오가는 길 오분 정도 걸리는데 밖으로 나간다. 날씨가 덥지 않다. 해는 있어도 바람도 같이 있어서인지,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집에 와서 창문을 모두 열었다. 환기도 시킬 겸 나는 곧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채니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세탁기 돌려둔 게 있다. 남편 옷. 이틀 전인가 집에서 남편 티셔츠 한 장 꺼내 입었다. 내 옷은 빨아서 말리고 있었고, 면 티밖에 없었다. 땀이 나서 면 티는 입기 싫었다. 남편 기능성 티셔츠 내가 사준 것 눈에 보이길래 집어 들어 입었다. 입는 순간부터 쿰쿰한 냄새가 났다. 세탁이 잘 안됐나 싶었다. 티셔츠를 들어서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거렸다. 남편이 말한 게 이거구나 싶었다. 남편은 몇 번 내게 말했다. 옷에서 땀 냄새가 난다고. 남편은 원래도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에. 이번 여름이 더워 더 그런가 싶었다. 사실 남편이 말해도,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탁할 때 가루형 세제 추가해서 두 가지 세제로 빠는 정도였다. 하지만 입어보니 알았다. 냄새는 심각했다. 잠깐 입어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하루 종일 맡는다 생각하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바로 핸드폰 열어서 인터넷 창 켰다. 네이버에 땀 냄새 제거하는 세탁법 검색했다. 포스팅 몇 개 읽어봤다. 그러다가 땡스맘 인스타가 생각나서 들어가 봤다. 관련된 주제로 세탁법이 눈앞에 바로 보였다. 눌렀다. 영상을 봤다. 통에 물을 받아 세제를 녹이고, 옷을 담가둬야 했다. 담가두기엔 빨아야 할 옷이 너무 많고, 귀찮았다. 세탁 코스 중에 불림 세탁이라고 있다. 그걸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 티셔츠, 바지 대여섯 벌 정도 넣고 세제 넣었다. 세제는 말하는 대로 넣었다. 시작 버튼을 눌렀다. 땀 냄새는 햇볕에 말리는 게 좋다고 해서 어제 빨지 않았다. 어젠 하루 종일 비가 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니, 잘 말랐으면 싶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집에 와보니 한 이십분 남았다. 미리 돌려놓길 잘했다. 나갈 일정이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집이 시원하니까 앉아서 뭐든 하기 좋았다. 채니가 어질러놓고 그냥 간 장난감 정리했다. 요즘 색칠공부하겠다며 타요 캐릭터들 잔뜩 출력해서 어지른다. 철을 해놔도 빼버리기도 하고. 종이를 한곳으로 모았다. 색연필도 케이스에 모두 담았다. 거실이 환해졌다. 장난감 바구니가 가지런히 창가 앞에 놓여있다. 소파 쿠션도 정리하고, 채니 책상도 한쪽으로 밀어뒀다.




나갈 짐 챙겼다. 나가서 일을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하다. 노트북을 가져가는 건 좋긴 하지만, 덥고 무겁다. 생각보다 집은 시원하다. 그럼 몸을 가볍게 나가기 위해 집에서 컴퓨터로 할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서 밥 먹고 차만 마셔야 지로 바뀌었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 했다. 서류 검토하거나 작성해서 보내야 하는 것들 처리했다. FGI 자료도 한 번 더 살펴봤다. 궁금해서 체크해 뒀던 것들 찾아보기도 하고. 계획한 일을 마쳤다.

나갈까 망설였다가 밥도 집에서 먹기로 했다. 결국, 회의 전 늦지 않게 도착할 시간에 집에서 나섰다.

버스 타고 가는 길. 바깥 구경도 하고, 가져간 책도 봤다. 이은대 작가 신간이다. 요약 독서법. 예약발매 기간에 사두고 보지 못했다. 책이 오는 시점이 채니 방학이 시작되는 때여서, 집에 없었다. 와서도 이것저것 하느라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었다. 나올 때 눈에 띄길래 집어서 나왔다.

회의는 한 시간 반 예정이었으나, 두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택시를 검색했다. 오늘은 남편이 지방 출장 갔다가, 친구까지 만나고 온다고 했다. 내가 늦는 때에 남편이 데리러 갈 수 있다면 상관없긴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채니를 빨리 데리고 올 수 있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거다. 회의도 늦어지는 바람에 곧 퇴근시간도 겹칠 터였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갈아타야 한다. 여러 핑계를 대며 택시를 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덥고 귀찮고 힘들어서다. 카카오 앱을 켜서 택시를 불렀다. 지역 택시를 체크하는 란을 혹시 모르니 눌러봤다. 지역 할 증 붙는 걸 줄일 수 있으니까. 일분 거리에 택시가 있다고 떴다. 러키 비키다. 바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기사는 손님이 KBS 앞에서 내렸다고 했다. 바로 콜이 와서 빈 채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혹시 해서 눌러봤는데, 택시가 잡혀 놀랐다고 말했다.




도착 장소를 집 앞으로 찍었었다. 갑자기 요가원 생각이 나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후문으로 가는 걸로 찍었는데, 정문 앞에서 내려달라고.

며칠 전 남편, 채니랑 집에 차 타고 오는 길. 요가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안 그래도 요즘 집 근처에서 운동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땅치 않았다. 집 앞에 헬스나 필라테스는 별로 가고 싶지 않고. 내가 딱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반경 내에 있었다. 나는 어 언제 생겼지라고 말했고. 남편도 그쪽으로 오가지 않아 몰랐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잘 가지 않는 곳이긴 하다. 정문 쪽이어서, 우리는 후문이랑 더 가깝다. 집에 들어가면서 네이버에 검색했다. 요가원 블로그가 있었다. 이미 가오픈 기간은 지났다. 이 주간 무료체험도 있었다. 알았다면 참여해 봤을 텐데. 수업시간표만 나와있고, 가격은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둘러보고 가면 좋을 거 같았다. 택시 기사는 요가원 문 앞에 정차했다. 내려서 바로 요가원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사람과 아기 한 명이 올라가면 딱 맞을 듯한 좁은 계단이 위로 보였다. 이게 블로그에서 본 그 계단인가라고 생각하며 올라갔다. 요가원 블로그에 계단에 대한 포스팅이 있었다. 요가원장은 요가원 자리를 찾으면서 계단도 수행의 일부로 인식되는 뭐 그런 공간을 찾았던 거 같다. 그 내용이 떠오르며 그럴듯하다 느껴졌다. 계단을 다 올라갔더니 살짝 숨이 찼다. 운동 부족이지 뭐. 유리창으로 요가원 안이 보였다. 나는 수련시간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서 상담을 못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문 안쪽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사람이 한 명 나왔다. 원장이구나 싶었다.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갑자기 손님이 오니 놀란 거 같기도 했다. 구경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줬다. 바닥에 요가 매트가 여섯 개 정도 깔려있었다. 벽은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져있었고, 새집 냄새가 났다. 창가 쪽으로 화분도 몇 개 있었다. 한쪽 벽은 창이 크게 나있어서 불을 켜지 않아도 밝았다. 나는 서서 요가원 내부를 살펴봤다. 원장도 서서 여기서 운동을 할 거라고 말해줬고. 나는 비용을 물었다. 원장은 복도 테이블에 나를 앉으라 했다. 비용도 알려주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설명해 줬다. 나에게 요가를 해본 적 있냐고 물었다. 칠팔 년 전에 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 낳고 하면서 운동 안 하다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수 치료 요즘 받고 있는 것도 말하고. 이것저것 원장은 물었다. 운동을 안 한 지 오래됐으면 일주일에 두 번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원장은 말했다. 다음 주부터 하기로 하고 나왔다.




어린이집으로 갔다. 벨을 누르자 일층 현관문이 열렸다. 어린이집 앞에 가서 벨을 누르려고 멈춰 섰다. 문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말하고 있다. 여기 앉아 있다가 벨이 눌리면 나가자고. 채니는 엄마라고 말하기도 하고 뭐라고 말한다. 웃음소리도 들리고. 내가 벨을 누르자 현관 문이 열렸다. 채니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엄마라고 말하고 안겼다. 선생님은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서로 인사하고 우리는 어린이집을 나왔다. 채니는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밖에 나가서 안아주겠다고 했다. 현관에 계단이 서너 개쯤 되는데 거기에서 안으면 허리를 덜 숙여도 된다. 그곳에서 채니를 안아 집 방향으로 걸었다.

채니는 놀이터에 가자고 했고, 나는 너무 더워서 안된다고 했다. 샌드위치를 가져왔는데, 집에 가서 같이 먹자고 했더니 더 이상 놀이터 얘기는 없었다. 샌드위치는 어디서 났는지, 뭔지 얘기하느라.

같이 손을 씻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접시에 샌드위치를 꺼내서 놓아줬다. 채니는 빵 몇 입 먹더니 안에 계란, 햄, 토마토만 빼먹었다. 반은 내가 먹었다. 채니가 복숭아 먹고 싶다고 하길래 씻어둔 복숭아 잘라서 줬다. 먹다가 수박이 또 먹고 싶다고 했다. 다 먹을 수 있냐니까 그렇다고 하길래 냉장고에서 수박 통을 꺼냈다. 아침에 채니가 어린이집 가기 전에 먹고 남은 것 썰어뒀었다. 뚜껑을 열었더니 포크를 달라고 했다. 오른손으로 포크를 받아들더니 수박을 찍어서 알아서 잘 먹었다. 배불러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통 하나를 혼자 비웠다. 수박을 먹었더니 티셔츠가 다 젖었다. 물기 남아있는 것 대충 닦아내고 티셔츠를 벗겼다. 바지는 안 입고 있어서 물로 씻는 게 낫을 거 같았다. 씻겨서 옷을 갈아입혔다.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혼자 잘 놀고 있길래 저녁을 준비하려고 했더니 안아달라고 했다. 같이 요리하고 싶어서. 야채 볶음밥을 하려고 했다. 채니가 자꾸 보채서 말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볶을 때 같이할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채니는 나에게 말했다. 기다리는 거 아니라고. 기다리란 말을 싫어한다. 나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랑 아빠 둘 다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니니까. 재료를 다듬었다. 밥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 올렸다. 불을 켰다. 올리브오일을 찬장에서 꺼내 서너 바퀴 둘렀다. 다듬어둔 야채를 넣었다. 냉장고에 가서 계란을 꺼냈다. 두 개를 깨서 프라이팬에 넣었다. 그 사이 데워진 밥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냈다. 프라이팬에 넣었다. 주걱을 찾아서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러닝 타워를 가스레인지 옆으로 놨다. 채니를 러닝 타워에 올려두고 나도 그 앞에 섰다. 나는 프라이팬을 왼손으로 꽉 쥐었다. 채니와 같이 주걱을 들었다. 밥을 같이 볶았다. 채니는 혼자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불 앞이라 뜨거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니는 몇 번 주걱을 휘젓더니 뚜껑을 닫자고 했다. 아직 더 볶아야 한다고 말하고 몇 번 더 뒤적거렸다. 야채가 익도록. 소금을 꺼내서 간을 맞췄다. 내가 소금통을 들고 톡톡 내려치니 채니가 통 뒷부분을 잡고 같이 하는 시늉을 했다. 웃는다. 좋아하면서. 채니에게 불을 끄라고 했다. 채니는 주걱을 한 쪽에 내려두고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나는 프라이팬을 꽉 쥐고, 불을 끄는 채니를 봤다. 끄자마자 가스밸브를 잠갔다. 프라이팬을 식탁으로 옮겼다. 채니도 러닝 타워에서 내려와 식탁의자에 앉았다. 서로 그릇에 나눠 담아 밥을 먹었다. 밥 다 먹고 혼자 거실에서 채니가 놀길래 나는 설거지를 했다. 채니는 평소에도 주방놀이 잘 가지고 논다. 가끔 필이 받으면 주방장에서 조리도구 모두 꺼내가지고 가서 자기 장난감이랑 섞어서 논다. 오늘도 그랬다. 조리도구 세트도, 나무 도마도 모조리 꺼내서 주방과 거실에 벌려뒀다. 몇 개 치우다가 더 이상은 치우기 힘들어 내버려뒀다.


채니와 씻었다. 좀 있으니 문장 수업할 시간. 밤 아홉시부터 줌으로 한다. 이은대 작가가 진행한다. 백여 명 넘는 수강생이 줌으로 접속해서 수업 듣는다. 채니 챙기다가 접속했더니 이미 시작했다. 남편이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채니도 같이 듣겠다 하여 내 무릎에 앉아 같이 화면을 봤다. 말이 같이 듣는 거지, 선생님 소리 잘 안 들린다. 채니가 옆에서 크게 이야기한다. 선생님 말하는 것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잠시도 안 쉬는 건 아니니까 들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듣는다. 어찌저찌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오늘 하루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도 풀렸나. 하품이 나고 졸음이 몰려왔다.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건 무엇일까. 계획된 일도 진행되지만, 계획되지 않은 일도 하게 된다. 날이 선선해서 꾸무럭거렸다. 나가서 외식하고 회의에 참석하려 했는데 계획과 달라졌다. 계획대로 가면서 책을 읽었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계획과 달리 회의가 삼십분 늦어졌다. 집에 바로 갈 계획이었으나, 발걸음을 돌려 요가원에 갔다. 상담을 받고 학원을 등록했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약속이 있었다. 채니랑 둘이만 준비해서 먹게 됐다. 그 덕에 채니는 오늘 볶음밥을 처음 시도했다. 처음 시간관리 배울 때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시간을 타이트하게 계획하고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유동성도 필요하다고. 오늘 그 말이 실감이 났다. 그 틈에 오늘 많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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