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 그리고 잡기

by 서한나

눈이 떠지지 않았다.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 반.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한 숨 더 자려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다리 쪽에 있던 이불을 잡아당겨 몸까지 덮었다. 돌아누우니 보이는 채니. 옆에서 잠들어있다. 채니 역시 자다가 이불을 다 걷어찼다. 이불을 덮어줬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여섯시 반.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수전을 올렸다. 물이 나와 양손으로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양치했다. 주방으로 갔다. 주전자에 물을 담았다. 끓이는 버튼을 눌렀다. 액정에 온도 보인다. 차 끓이는 용이라서 칠십 도부터 설정이 된다. 액정을 보다가 사십오 도에서 버튼을 껐다. 컵에 물을 담아 마셨다. 유산균 씹어 먹었다.


공부방으로 갔다. 책상 앞에 앉아 커피 명상 한꼭지 읽었다. 긍정 확언 썼다. 글 쓸 거 메모했다. 메모만 먼저 해뒀다. 오늘은 시간 상 오후에 써야 할 것 같다.

마침 채니도 일어나서 나에게 왔다. 시간이 잘 맞았다 생각했다. 오늘은 세미나에 가야 해서 아침에 채니랑 같이 나간다. 채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쯤 자기 시간을 보내야 어린이집에 갈 때 아무 말이 없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내가 챙겨주는 아침을 먹기도 하고. 채니와 같이 씻었다. 채니는 어린이집 원복을 입혔다. 일주일에 한 번 원복 입는다. 체육시간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원복을 입으면서 채니는 말했다. 포비 체육 선생님 오는 거냐고. 나는 그렇다고 답해줬다. 오늘은 무슨 체육 할까 질문하자, 채니는 웃으면서 모른다고 했다. 채니 어린이집 가방 챙겼다. 도시락통, 물통, 낮잠이불. 월요일은 짐이 많다. 현관 앞에 모두 내려놓고. 나도 채비를 했다. 옷 입고, 화장했다. 가지고 나갈 가방도 챙기고.


준비가 다 됐길래 채니와 같이 집을 나서려는 데, 채니가 중장비 차 하나를 가방에 안 넣었다며 가져 나왔다. 채니는 요즘 타요 중장비 차들을 가방에 넣어서 어린이집에 간다. 내가 놓고 가자고 해도 안된다며 가방에 꾸역꾸역 넣는다. 네 대 나 가방에 넣어서 꽉 찼다며 가방을 보여줬다. 내려놓고 가자고 하자 신발장 앞에 내려뒀다. 나는 채니 마음이 변할까 문을 열면서 채니에게 나가자고 했다. 다행히 채니는 바로 현관을 나섰다.

어린이집에 채니를 데려다줬다. 채니가 벨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선생님이 채니를 보며 웃으며 팔을 벌렸다. 채니는 선생님을 보더니 웃고, 현관문 뒤쪽으로 가서 숨었다. 나는 채니에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냐 하니 채니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채니는 현관문을 잡고 빼꼼히 안쪽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선생님이 웃으며 채니에게 들어오라고 하자 나를 한번, 선생님을 한번 보더니 현관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아기 벤치에 채니를 앉혀서 신발을 벗겼고, 나는 가방과 낮잠이불을 선생님 옆에 놓았다. 인사하고 채니와 헤어졌다.




버스 타러 가는 길.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온다고 해서 양산 대신 우산을 챙겼다. 크로스로 매는 가방. 내가 움직일 때마다 우산이 보인다. 나 여기 있으니 안심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가방 줄을 꽉 쥐고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 가는 버스는 서너 대 된다. 그중 역과 가장 가까이 내려주는 버스가 도착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지하철에 탔다. 앉을 자리는 없었다. 이럴 때는 어딜 서냐가 중요하다. 지하철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 앉아서 가면 좋으니까. 한번 훑어보다가 한 아주머니 앞에 섰다. 몇 정거장 안 갔을 때, 아주머니가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머니 앞 쪽으로 좀 더 자리를 옮겨 섰다. 내려면 앉을 요량으로. 앉아서 출력해온 종이 쳐다보면서 멘트 눈으로 익혔다.


오늘 세미나에서 진행을 맡았다. 대략적인 대본은 쓰지만 외우지는 않는다. 흐름만 익힌다. 중요한 단어에 체크해두고. 사회를 몇 번 보다 보니 알게 됐다. 준비한 대로 기계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세미나에서 사회를 본 날은 전체 멘트를 다 적었었다.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했었기 때문에 흐름은 알고 있었다. 예상되는 멘트를 모두 썼다. 거진 그 멘트대로 할 수 있긴 했지만, 사실 생각이 안 나서 못하기도 했다. 두 번째 사회 볼 때부터는 대략적으로 적어두고, 꼭 해야 할 멘트에만 강조로 체크해뒀다. 잊지 않아야 해서. 오프닝, 첫 강연자 소개, 클로징 이렇게 세 파트 준비해 가면 된다. 중간 내용은 상황에 따라 바뀌고, 순서가 추가되기도 하기 때문에 작성해갈 수 없다. 순발력이 필요하다. 처음에 순서가 바뀔 때는 말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적절한 멘트가 나오지 않을 때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등 줄기로 땀이 흘렀다. 등이 뒤가 아니라 앞이라면, 옷이 젖는 게 티 났을 거다. 지금은 순서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긴장이 덜하다. 그 바뀌는 순간, 어떻게 하면 더 적확한 멘트를 낼까 이 생각뿐이다.


세미나장에 도착했다. 사회를 보는 날은 좀 일찍 채니를 보내고 집을 나선다. 일찍 도착했더니 사람이 몇 없다. 마이크, 빔프로젝터 확인했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스트레칭도 가볍게 했다. 물도 한 병 마셨다. 준비를 마치니, 세미나가 시작될 시간.


나는 옷차림을 다시 한번 살폈다. 재킷 단추를 채웠다.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시작 일분 전. 내 인사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세미나 중간, 순서들이 추가됐다. 스텝이 와서 나에게 말해준다. 그럼 종이에 적어뒀다. 순서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도 했다. 그럴 때는 지금 강연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힌트가 있기도 하다. 강연자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면 메모했다. 잠깐 스치는 생각이라 잊기 쉽다. 두 순서가 추가됐고. 세미나는 끝났다. 하고 나면 늘 아쉬움이 있다. 말을 버벅대기도 한다. 더 좋은 멘트가 나중에 생각나기도 하고. 혼자 서서 마이크를 정리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A 작가는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에도 다녀왔고.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린다. 이 신호음이 왜인지 모르지만, 떨린다. 뭔가 전화를 받을까 안 받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상대방이 어떨지도 궁금해서 인 것 같다. 큰일이 있기도 해서 더 그랬나 보다. 신호음이 계속될수록 가슴이 콩닥거렸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끊었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뒀다.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몇 분 뒤 전화 진동이 울렸다. A 작가다.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로 A 작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 그래도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요즘 수업에서도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곧 수업에서도 만나기로 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괜찮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 슬픔이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듣고 있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좀 괜찮아지면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깐 동안 앉은 채로 멍하게 있었다.




채니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늘 비가 온다더니 오지 않았다. 날씨는 계속 흐려서 놀이터에 가도 될 거 같았다. 얼마 전 집 근처에 놀이터가 새로 생겼다. 채니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아직 안 된다고 말했었다. 오늘도 그곳이 가고 싶다고 말하는 채니. 집에 가서 어린이집 가방을 두고, 짐을 챙겨 나왔다. 놀이터로 갔다. 초등학생 세명이 바구니 그네를 타고 있었다. 채니는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하더니 막상 가니 그 앞에 서있기만 했다. 안아달라고 하길래 채니를 안고 놀이터를 한 바퀴 둘러 돌았다. 놀이터 중앙에 언덕이 있다. 높이는 이미터 정도 되는 거 같다. 그곳 한쪽에 암벽등반하듯이 손잡이들이 달려있다. 잡거나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색이 눈에 띈다. 채니도 보더니 뭐냐고 하길래 말해줬다. 말을 이해한 건지 자기가 손으로 잡고 언덕을 올라갔다. 막상 올라는 갔지만 뒤돌아보니 무서웠나 보다. 표정이 굳었다. 어쩔 줄 모르는 다리.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기 바빴다. 양팔을 나에게 뻗은 채로 나를 부르며 서있다. 나는 채니에게 말했다. 내려와라고. 손짓도 하면서. 채니는 목소리를 더 높여 '엄마'하고 불렀다. 혼자 내려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채니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채니에게 다가갔다. 언덕을 반쯤 올라가니 채니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서로 양손을 잡고 한발씩 디디며 언덕을 내려왔다. 채니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는 채니.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채니를 안았다. 채니는 이제 그만 가자고 말했다.




언덕 위에서 굳어있던 채니는, 처음 세미나에서 사회를 볼 때 나와 닮아있다. 나는 처음에 채니에게 혼자 내려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채니는 내가 함께해 주길 기다렸다. 어쩌면 혼자 해내야만 성장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니와 함께 손을 잡고 내려오는 길. 채니는 언덕을 경험했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

내가 세미나에서 처음 강의했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강의를 준비할 때 자료도 확인해 주고, 시간을 내서 줌으로 미팅을 해줬던 B가 있었다. 내 말투, 제스처도 꼼꼼하게 피드백해 주면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성장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덕에 용기를 내서 다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혼자라면 포기했을 일도, 같이하면 해낼 수 있기도 하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 손을 내 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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