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팀장한테 성과를 빼앗기다

EP4. 너만 당한 게 아니더라

by 날라리부장

다음날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먹으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김지영 대리님 맞으시죠?"


낮고 조심스러운 여자 목소리.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 작년에 마케팅 1팀에 있었던 정수연이에요."


정수연?

1년 전에 우리 팀에서 갑자기 사라진 선배.


"아, 선배님! 어떻게...?"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조용한 데서..."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났다.



회사 뒷골목


건물 뒤편 골목으로 나갔다.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대리님... 들었어요. 박팀장이 또 그랬다고."

"또?"

"나도 당했거든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1년 전 이야기


"작년 이맘때였어요.

제가 8개월 동안 준비한 브랜딩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정수연 선배의 목소리가 떨렸다.


"발표 전날 밤, 박팀장이 갑자기 발표자를 바꿨어요.

자기가 발표하겠다고."

"그래서요?"


"발표 끝나고 임원들이 박팀장 칭찬 일색이었죠.

'박과장의 혁신적 전략' 이러면서."


똑같았다.


"저는 그냥 '팀원 중 하나'로 언급됐어요.

항의했죠. 그게 제 프로젝트라고."

"그랬더니요?"

"'팀으로 한 거잖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내가 들었던 그 말.



그 후


"참을 수 없어서 인사팀에 갔어요. 근데 알아요? 뭐래요?"

"..."


"'증거가 없다.

조직에서는 팀장이 대표해서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면서 오히려 저보고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미쳤네..."


"그다음부터는 지옥이었어요."


정수연 선배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박팀장이 저를 모든 중요 프로젝트에서 배제했어요.

회의에도 안 부르고, 정보 공유도 안 하고.

팀원들도 저를 문제아 취급하기 시작했죠."


"..."

"6개월 버티다가 결국 팀 옮겼어요.

아니, 쫓겨났죠.

지금은 다른 회사에 있어요."



다른 피해자들


"선배님만 당한 게 아니에요."

"네?"


"박팀장 밑에서 3년 동안 4명이 비슷한 일을 당했어요."


4명?


"2022년 이성민 대리 - 고객 만족도 개선 프로젝트"

"2023년 초 강혜진 선임 - 신규 서비스 기획"

"2023년 말 저 - 브랜딩 프로젝트"

"2025년 지금 당신 - 디지털 마케팅 전략"


"모두 비슷한 패턴이에요.

팀원이 몇 달 밤새서 만들면,

박팀장이 마지막에 가로채서 발표하는 거."


"왜 아무도 문제 제기 안 했어요?"

"다들 했어요. 근데 증거가 없었어요."



증거의 문제


"박팀장은 교묘해요.

회의록에 자기 이름을 슬쩍 끼워 넣고,

중간중간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 관여한 척하고."


정확히 내가 겪은 것.


"그리고 발표 직전에 갑자기 발표자를 바꿔요.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럼 항의하기도 애매해지죠."


"하지만 파일 기록이나 이메일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회사에서는 '팀장이 총괄했다'는 논리로 밀어붙이거든요."


멍해졌다.

내 증거들도 부족한 걸까?



하지만


"대리님."

정수연 선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저는 증거가 없었어요. 근데 대리님은 있잖아요."

"네?"


"아까 전화하기 전에 확인했어요.

대리님이 증거 모으고 있다는 거."

"어떻게...?"


"김사원이 말해줬어요. 자기한테 인터뷰했다고.

그리고... 하나 더."

"뭔데요?"


"박팀장이 작성한 기여도 평가서.

대리님 70%, 박팀장 20%라고 쓴 거.

그거 있죠?"

"어떻게 알아요?"


"그게... 저도 찾았거든요. 작년에.

근데 이미 삭제된 후였어요."



삭제?


"무슨 말이에요?"

"박팀장이 매번 월말 보고용으로 기여도 평가를 써요.

근데 발표 끝나면 바로 지워요.

증거 인멸하는 거죠."


소름이 돋았다.


"대리님, 그 파일 지금 백업했죠?"

"네... 클라우드에..."


"절대 회사 클라우드 쓰지 마세요

개인 이메일로, USB로,

여러 곳에 백업하세요.

박팀장이 IT팀 통해서 삭제 요청할 수도 있어요."


"진짜요?"

"네. 이성민 대리 때 그랬거든요."



조직적 은폐


"회사가 아는 거예요? 박팀장 이런 거?"

정수연 선배가 씁쓸하게 웃었다.


"알겠죠. 근데 박팀장 실적이 좋잖아요.

매 분기 좋은 프로젝트 성과 내고.

물론 다 팀원들 성과 가로챈 건데."


"..."


"회사 입장에서는 실적 내는 팀장 하나 vs 불만 제기하는 팀원 몇 명. 누

구 편을 들겠어요?"


"그럼... 방법이 없는 거예요?"

"하나 있어요."



유일한 방법


"완벽한 증거를 모아서, 한 번에 터뜨리는 거예요."

"한 번에요?"


"네. 조금씩 제기하면 회사가 하나씩 무마해요.

근데 결정적 증거를 모아서 한꺼번에 공개하면 덮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요?"


"대리님이 가진 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특히 기여도 평가서.

그거 결정적이에요."


정수연 선배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증거가 없어서 졌어요.

근데 대리님은 다를 수 있어요.

제발, 꼭 이기세요."


"선배님..."

"저 대신이라도. 우리 모두 대신이라도."



저녁, 카페에서


정수연 선배와 만났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 두 대.


"제가 1년 동안 모은 거예요."

선배가 파일을 보여줬다.


다른 피해자들 연락처

박팀장의 과거 프로젝트 이력

팀원 교체 기록

의문스러운 퇴사 패턴


"이성민 대리는 지금 호주에 있어요.

연락 가능해요."


"강혜진 선임은 결혼하고 육아휴직 중인데,

증언 가능하대요."


"그리고 이거."

박팀장의 승진 이력.


2022년 - 대리 → 과장 (이성민 프로젝트 성과)

2023년 - 과장 → 차장 (강혜진, 정수연 프로젝트 성과)

2025년 예정 - 차장 → 부장 (내 프로젝트 성과)


모든 승진이 팀원들의 성과로 이뤄졌다.



동맹


"우리 같이 싸워요."

정수연 선배가 내 손을 잡았다.


"저는 이미 회사 나갔으니 잃을 게 없어요.

증인으로 나설 수 있어요."


"선배님..."


"다른 피해자들도 연락했어요.

모두 증언하겠대요.

이번엔 우리가 이길 수 있어요."


눈물이 났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밤, 집에서


남편에게 보고했다.


"여보, 나만 당한 게 아니었어.

4명이나 더 있었어."


"진짜?"


"그리고... 증인들이 생겼어.

함께 싸울 사람들."


"그럼...?"


"이번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새벽 2시


단톡방이 생겼다.


정수연 (전 팀원, 2023년 피해자)

이성민 (전 팀원, 2022년 피해자)

강혜진 (전 팀원, 2023년 피해자)

김지영 (현 팀원, 2025년 피해자)


정수연: 자료 정리했어요. 내일 공유할게요.


이성민: 호주에서도 화상 증언 가능해요.


강혜진: 제 파일 기록도 아직 있어요.


나: 여러분... 고맙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정수연: 우리 이번엔 꼭 이겨요.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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