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상사 밑에서 살아남기: 워킹맘의 오피스 서바이벌5

4. 아이 아플 때마다 "죄송합니다"

by 날라리부장

오전 8시 30분, 어린이집 전화벨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막 회사에 도착했을 때였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 OO어린이집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린이집에서 오전에 전화하는 건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다.



"어머님, OO가 열이 38.5도예요. 빨리 데려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내 머릿속 계산기:

지금 택시 타면 30분

병원 가면 2시간

오늘 오후 2시 중요한 회의

내일 마감인 보고서




과장님께 말하는 순간


책상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박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죄송한데... 아이가 열이 나서..."


목소리가 떨렸다.

복직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조퇴라니.


박과장의 반응이 걱정됐다.


'또 아이 핑계야?'

'이래서 워킹맘은...' 하는 말이 나올까 봐.


그런데 박과장이 말했다.


"언니, 빨리 가보세요!

아이가 제일 중요하죠.

회의는 제가 진행할게요."


"하지만 제가 준비한 자료가..."


"언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이 먼저 챙기세요.

회의 내용 정리해서 나중에 공유드릴게요."




죄송합니다의 연속


그날 오후, 병원 대기실에서 박과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과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급하게 자리를 비워서...


박과장: 언니, 죄송하다는 말 그만하세요 �

아이 괜찮아요?


나: 독감이라고 하네요.

내일도 출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과장: 언니!!! 죄송하다는 말 진짜 그만!

아이 돌보는 게 당연한 거예요.

회사 일은 걱정 마세요 �


하지만 나는 계속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습관처럼.




김부장 시절의 트라우마


왜 이렇게 미안해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김부장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김대리, 또 아이 때문에 빠지냐? 회사가 놀이터야?"

"출근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아예 그만두든가."

"육아휴직 다녀온 사람들은 항상 이래. 책임감이 없어."


그래서 임신 중에도,

입덧이 심해도,

아이가 아파도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다.


워킹맘은 항상 미안해야 하는 존재인 줄 알았다.




박과장의 다른 접근법


다음 날 오후, 아이 열이 떨어져서 늦게라도 출근했다.

책상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언니, 어제 회의 내용 정리해뒀어요.

아이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 박과장-


그리고 내 자리에는 따뜻한 꿀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박과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언니, 제 친구들도 다 워킹맘인데요,

진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직 결혼도 안 했지만, 일과 육아 병행하는 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팀원들의 반응



더 놀라운 건 팀원들의 반응이었다.


최선배 (30대 후반, 미혼): "선배님,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도와드릴게요. 아이 키우면서 일하는 거 정말 존경스러워요."


김사원 (20대, 미혼): "선배님, 제 엄마도 워킹맘이셨는데 항상 미안해하셨대요. 근데 저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 너무 멋있었거든요!"


이대리 (30대 초반, 기혼 무자녀): "형님, 우리가 독박 육아 하는 건 아니잖아요. 팀으로 커버하는 거죠!"


이럴수가..

김부장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또 일어난 위기



일주일 후, 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OO가 배탈이 나서..."

이번엔 오전 11시였다. 또?


박과장에게 말하러 가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달 사이에 벌써 두 번째...


"과장님... 또 아이가..."

"알았어요, 언니. 빨리 다녀오세요."

"정말 죄송합니..."

"언니!"


박과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제가 언니한테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네?"




박과장의 제안



"언니, 앞으로 '죄송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라고 해주세요."


"네?"


"아이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건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희가 언니 업무를 커버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요.

언니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언니도 다른 팀원들 힘들 때 도와주잖아요.

서로 돕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우리한테 고맙다고 해주세요.

그게 더 기분 좋아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달라진 나의 태도



그날부터 조금씩 바꿔봤다.


Before: "죄송합니다. 아이 때문에 또 조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After: "아이가 아파서 조퇴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회의 커버해줘서 고마워요."


Before: "죄송해요. 제 일까지 맡기게 돼서..."

After: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엔 내가 도울게!"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예상치 못한 반전



한 달 후, 박과장이 갑자기 병가를 냈다.

독감이라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나: 과장님, 얼른 나으세요! 업무는 걱정 마시고 푹 쉬세요

박과장: 언니... 저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미안해요.

나: 죄송하다는 말 하지 마세요!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 거예요!

박과장: ㅋㅋㅋㅋ 제 말을 제가 듣네요




팀 문화의 변화



그렇게 우리 팀에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았다.



우리 팀의 규칙:

아이 때문에 조퇴/결근은 죄가 아니다

아프면 당당히 쉰다

서로 커버하는 건 팀워크다

"죄송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너희 팀 분위기 되게 좋더라? 비결이 뭐야?"


"리더가 좋아. 나이는 어려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




마흔 워킹맘의 깨달음



12년 직장생활 중 처음으로 깨달았다.

워킹맘은 미안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맘이 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냥 사람이면 된다.


아플 때 쉬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워하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12살 어린 90년생 리더였다.



"죄송합니다"에서 "고맙습니다"로.

작은 말 하나의 변화가 가져온 큰 변화!


다음 편에서는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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