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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Jan 22. 2021

태양보다 눈부신, 고흐의 해바라기

해바라기

  

싫어하는 꽃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망설임 없이 "해바라기는 좀 별로예요."라고 대답했었다.  해바라기는 어린 시절, 꽃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꽃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큰 키에 큰 얼굴, 강렬한 노란색을 띠던 이 꽃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외양일 뿐 아니라 그 시절 해바라기 씨앗처럼 생긴 초코볼을 먹을 때마다 보던 포장지 속 해바라기를 통해 학습된 기억이었다.

해바라기의 다소 투박한 모습이 상상하던 꽃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에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해바라기는 안 예쁜 꽃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게 되었다.



작업실을 오픈하고 맞이한 첫여름, 연이어 기록을 경신하던 그해 무더위는 꽃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꽃이 함께 시들시들해져 갈 때쯤 해바라기를 시장에서 만났다. 얼굴이 엄청 큰 자이언트 해바라기부터 곰돌이 얼굴 같은 테디베어 해바라기, 얼굴이 작아 귀여운 미니 해바라기, 컬러가 진한  진노랑 ,  연한 연노랑 해바라기, 붉은빛을 띤 해바라기까지 다양한 품종의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꽃에서 에너지를 느껴본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해바라기는 마치 청량한 목소리로 까르르 웃는 아이들 같았다. 이 무더운 여름을 천진난만하게 즐기며 티 없고 밝은 얼굴로 당시 지쳐있던 내 마음을 따스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아마 그해 여름부터 해바라기는 나에게 더 이상 불호의 꽃을 넘어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꽃이 되었다.

   

테디베어 해바라기  (출처:gardenerspath.com)

 


 하지만 해바라기의 특성을 생각하면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바라보며 태양의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꽃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씨앗을 심으면 금세 새싹이 솟아난다. 그리고 조금만 지나면 잭의 콩나물처럼 키가 빠르게 자라  태양과 함께 뜨거운 8월을 더 환하게 밝혀준다. 이처럼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잘 자라는, 태양만 바라보는 이 순종적인 해바라기는 마치 너무 착하고 밝아서 마음이 쓰이는 친구를 보는듯하다. 심지어 한때 너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까지 들게 한다.  

  

이처럼 해맑은 해바라기는 가끔 종교적 상징으로 묘지에 심겨 죽음의 어둠을 밝히는 빛을 약속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한해살이 꽃이기도 한 해바라기는 뜨거웠던 여름  최선을 다해 살다가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년을 기약하며 가을에 사라지는, 삶의 덧없었음 상기시키기도 한다.

 해바라기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는 진정한 카르페 디엠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고흐는 이러한 해바라기의 덧없는 삶을 알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해바라기 그림을 남겼던 것일까? 아님 그저 눈부시게 일렁이는 해바라기의 금빛파도에 마음을 빼앗겨 신이 났던 것일까?

프랑스 프로방스 아를 근처의 해바라기 밭

 1888년 2월  고흐가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로 갔을 때 그의 눈앞에는 샛노란 해바라기 들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고흐는 선명한 색상에 신이 나서  오렌지색 , 황색, 암갈색의 해바라기로 캔버스를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흐는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고갱이 자신을 초라하고 미친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화가 나 면도날로 고갱을 위협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기까지 했다.  


폴 고갱 「해바라기 화가」 1888년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1888년 9월까지 해바라기 그림 네 점을 완성했고 2년 뒤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추가로 몇 점을 더 작업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림들이 꽃처럼 시든다"라고 슬프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해바라기> 연작은 오늘날 가장 많이 사랑받고 가장 높이 평가되는 그림에 속한다.

「해바라기 열네 송이」 1888년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지금이라도 당장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릴듯한 역동적인 해바라기의 움직임과. 캔버스 속 강렬하게 빛나는 황금색 물결은 고흐의 해바라기에 대한 열정과 흥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알수있게 해준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그의 이른 죽음 때문에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프로방스 들판에서 바라봤던 해바라기는 어쩌면 정말로 태양보다 눈부셨을지도 모르겠다. 고흐를 매료시킬 만큼 눈부시고 매력적인 해바라기는 고흐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처절했던 외로움을 위로하듯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여름만 되면  그를 상기시키며 뜨겁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도 해바라기는 너무 밝아서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 하지만 어느 꽃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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