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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Jan 22. 2021

갖고 싶어 지는 꽃,  튤립

튤립


"친구에게 선물할 꽃이에요." 한 여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튤립을 가리키며 나에게 꽃다발을 주문한다.



플라워 작업실을 운영하던 시절 장미보다 많이 찾는 꽃은 아마 튤립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 졸업식 선물로, 집들이 선물로, 아무 날도 아니지만 나에게 주는 한송이 선물로도

튤립은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매력적인 꽃이다.


장미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느낌 때문인지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 많이 찾는 반면 튤립은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친구에게 툭 건네도 어색하지 않을 꽃이다. 그리고 매 시즌 나오는 꽃이 아니다 보니 ( 물론 꽃시장에는 수입 튤립이 있어서 4계절 내내 볼 수 있지만 다양한 컬러와 형태의 모든 튤립을 볼 수 있는 시즌은 겨울에서 봄 사이다) 특별하기도 하다. 그리고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속 수많은 튤립 이미지만 보더라도 자신의 세련된 미적 감성을 드러내는데 는 튤립만 한 꽃은 없는듯하다. 혹 어느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면 튤립 한다발을 선물로 가져가 보자. 그때부터 당신은 태도와 안목이 센스 있는 사람으로 주변에 기억될 것이다.



튤립이 매력적인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아마 일반 꽃과는 다른  독특한 조형미에서 오는듯하다. 봉우리를 다물고 있을 때의 튤립의 심플하고 우아한 자태는 마치 예술적 오브제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튤립은 꽃장식이나 공간장식을 할 때 다른 꽃과 함께 어레인지 되기보다는 단독으로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여행할 당시 우연히  어느 골목에서 색색의 튤립을  아기 요람 같은 바구니에  빼곡히 진열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국의 어느 도시를 정처 없이 배회하던 여행자의 발걸음도 한참 멈추게 할 만큼 튤립은 그곳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평범한 튤립은 한참을 내시선과 발길을 붙잡았다. 결국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내손에는 관광기념 선물 대신 튤립 한다발이 들려있었다.




매일 꽃을 접하는 나지만, 어떤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꽃이 있는 반면 튤립은 갖고 싶은 욕구가 들게 하는 꽃이다. 시장에서 컬러별로 진열되어있는 튤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쇼퍼홀릭이라도 된 듯, 홀린 듯 몇 단씩 집어 들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식탁 한편에는 토요일 꽃시장에서 사 온 색색의 튤립이 화병 한가득 꽂혀있다. 온도에 따라 꽃잎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는 이 매력적인 꽃을 마음껏 보는 것이  지금 이 시즌 내가 누리는 작지만 화려한 사치이다.


튤립에 대한 유별난 소장욕구는 다른 의미에서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네덜란드의 경제적 황금기였던 17세기, '튤립 버블'이라는 용어가 생겨날 만큼 네덜란드 전역으로 튤립 투기의 광풍이 불고 있었다. '튤립 투기'라니 부동산 투기도 아니고 꽃으로 투기를 한다니, 마치 아름다운 투기처럼 들리지만 그저 튤립은 그들의 부의 과시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모두들 튤립 구근을 모으기 시작했고  희귀하고 새로운 품종을 모으는 튤립마니아가 생겨나면서 인기가 많은 품종의 경우 당시 연봉의 20배 수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황금기가 저물면서 튤립을 향한 열기도 꺼질 수밖에 없었고 18세기 히아신스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점점  시들어져 갔다. 하지만 그 열기 동안 튤립의 새로운 품종육성과 기술 발달로 인해 네덜란드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튤립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


이와 같은 투기의 이유는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원예업계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존재한다. 꽃시장에만 가더라도 그해 유달리 인기 있는 꽃이 있고,  새로운 품종의 꽃은 끊임없이 나오다 보니 이제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꽃도 더러 있다. 하지만 다른 업계와는 달리 꽃은 트렌드에 뒤쳐진다고 해서 ,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또한 사람의 손에 재배되는 꽃들이 아닌, 어느 뒷산의 바위틈, 폐허가 된 건물 틈 사이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꽃부터 이름 모를 들꽃까지 그들은 매해 피고 지며  우리와 열심히 공생하고 있다.

 사실 튤립 또한, 모래와 돌이 가득하고 가파른 산악지대, 다른 식물들 조차 살아가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생한다.  현재 튤립의 대표적인 자생지도 바로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대라고 한다. 상상이 가는가. ( 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닌 터키, 서아시아이다.)





튤립이 인류 역사상 인간에게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튤립의 수요가 없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인간이 더 이상 재배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튤립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어느 산맥 바위틈 사이에서 봄을 알리며 얼굴을 들어 올릴 것이다. 

우리가 아는 청순한 튤립의 모습이 아닌,  가파르고 거친 지대를 딛고 패기에 찬 얼굴로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튤립의 모습을 상상하며  외유내강의 이 매력적인 꽃을 소중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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