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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Aug 30. 2021

시든 꽃 아니에요?

스톡

언뜻 보면 시들었다고 종종 오해받는 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비단향꽃무라고도 불리는 스토크이다.


이 꽃의 봉오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하얀 솜털이 송송 나있다. 그래서인지  보송보송하기도 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의 마치 색색의 팝콘이 줄기 끝에 뭉쳐서 달려있는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하지만 봉오리가 잎을 벌릴 때 꽃잎이 뒤로 젖혀진 형태로 피면서 꽃을 받는 사람들에게 너무 확 피어버렸다는 느낌과 함께  힘이 없어 보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시장에 유통되는 스토크 중 연한 분홍빛과 보랏빛을  띠는 스토크는  자칫 보면 색이 바랜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다 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래도 시든 느낌을 준다는 것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꽃집에서  시든 꽃을 준 것 아니냐는 손님의 컴플레인을 받는 억울한 꽃이기도 하다.


나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한때는 스토크를 자주 애용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스토크는 단가가 많이 비싸지 않고 몇 송이만 들어가도  풍성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보니 아주 외면할 수도 없는 그런 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시장을 아무리 돌아도 예산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꽃이 많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스토크를 데리고 올 때도 솔직히 있었다.


몇 년 전 작업실을 운영할 당시 오직 스토크로만 구성된 졸업식 꽃다발을 주문받은 적 이 있다.

스토크를 너무 좋아하신다는 그분은 따님의 졸업식에 스토크를 한 아름 안겨주고 싶으시다며 표정과 목소리에 설렘이 한껏 담겨있었다.


그분의 설렘이 너무 인상 깊게 다가와 그때서야 난 처음으로 스토크를  진지한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는 시들어 보이기도 하고  불호에 가까운 꽃이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꽃들 중에 '오직 스토크'만 이라고 꼭 집어서 선택될 만큼 특별하고 아름다운 꽃이었던 것이다.


다시 새로운 눈으로 스토크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스토크만의 향도 톡 하면 떨어질듯한 연약한 꽃송이 하나하나도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보였다.

시들어 보여서, 초라해 보여서, 혹은  너무 싼 꽃으로 보일까 봐  등등의 이유로 외면하던 꽃이었던 스토크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직 스토크'만으로  한아름  잡았을 때의 그 향과 자태는 더욱더 강렬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처음부터 동경과 호감으로 시작하는 관계가 있는 반면 타인의 말들로 빚어진 오해와 내 안의 편견으로 인해 비뚤어진 첫인상을 가지고 시작하는 관계도 있다.

전자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첫 순간의 강렬함과 반짝거림이 바래지기도 하고 처음의 단단했던 결속감이 서서히 느슨해지며 어느 순간 온데 간데없는 관계로 변해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관계 중 어떤 관계는 만남이 지속될수록 오해와 편견의 껍질이 벗겨지며 새로운 시선으로 그 관계가 정립될 때가 있다. 그렇게 다시 세워지고 다져진 관계는 그동안의 부침을 딛고 맺어진 사이 이기에  은근하고 깊은 관계로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타인의 기준과 한순간의 판단으로만 규정지어져 왔었던 나와 누군가의 어떤 관계들도, 시들어 보인다고 외면받던 스토크가 어느 한 계기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며  향기도 자태도 모두 몽글몽글한  설렘으로 다시 다가왔듯 나도 누군가에게  진짜의 내 모습으로 다시 정의되어 쓰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과 말들로 두텁게 쌓아놓은 그 성안에서  진짜의 나를 보여주기 위하여 또, 누군가의 진짜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성을 매일매일  허물고 해체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그 과정 후에 맞닥뜨린 우리들의 진짜 모습은 서로에게  더 이상 상처 받지도 오해받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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