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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Feb 11. 2021

외로운 한송이, 고흐의 아이리스

아이리스


 아이리스를 처음 알게 된 건 고흐의 그림을 통해서이다.

한참을 지나 아이리스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약간의 당혹감이 기억이 난다. 고흐의 그림 속 아이리스가 하늘을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는듯한 푸른색의 꽃이었다면, 실제로 본 아이리스의 첫인상은 약간은 날카롭게 경직되어있는 차가운 보라색의 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스 같은 아이리스의 꽃잎이 하나둘씩 만개하며  그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아이리스가 내 눈앞에 펼쳐졌고 고흐의 아이리스도 처음에는 짙은 보라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빨간 안료가 희미해지면서 남색 빛을 띠게 되었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다.

붓꽃과에 속하는 아이리스는 5~6월에 개화하며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고흐의 생전 처절했던 외로움과 고통을 알기에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잔상이  오랫동안 남아 가슴 한편이 한동안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절 그렸던 <아이리스>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를의 노란 집을 떠난 후 가졌을 그의 크나큰 상실감이 나에게도 전해져 한참을 들여다본 작품이었다. 그는 온갖 생명이 만개하는 5월의 정원에서 마주친 아이리스를 어떠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아이리스> , 생레미, 1889.5,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박물관

 

한 무리의 푸른 아이리스 꽃들 사이에서 한송이의 하얀 아이리스가 외롭게 떨어져 피어있다. 하늘을 향해 기세 등등하게 활짝 피어있는 남색의 아이리스들과는 딜리 흰색의 아이리스 한송이는 그런 위풍당당한 남색의 아이리스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었던 그에게 남색의 아이리스 무리들은 서로를 기대며 의지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한편에 떨어져서 그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흰색의 아이리스는 이제는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된 그의  절망스럽고 고독한 심정을 대신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흰색의  아이리스는 기품을 잃지 않고 당당하며 고고한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내린다 하더라도 난 홀로 이 자리에 서서  물러서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맞이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보이는듯하다.

실제로 그는 생레미의 병원에서 외로이 병과 싸우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경건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작품을 그려나갔었다.


<네 송이 해바라기 꽃>, 파리, 1887.8, 오테를로, 크뢸러 국립미술관> : 한송이의 해바라기가  얼굴을 뒤로 돌리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무리를 이루고 있는 꽃들 속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꽃 한 송이,  나 홀로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꽃 한 송이,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의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평생을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어왔고 외로웠던 그의 심정을 그 꽃 한 송이에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처절했던 외로움과 슬픔은 그의 그림 자체이자, 고흐 자신 그 자체인 것이다.


고흐의  그림을 들여다보다 그의 슬픔에 내 슬픔이 오버랩될 때가 있다.

가끔 나는 보라색의 아이리스 무리 속 하얀 아이리스 한송이처럼, 외딴섬이 되어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내 잘못일까 나를 소외시키는 그들의 잘못일까를 고민하다 내 삶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그들이 내는 소란함에 혼자가 차라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막상 혼자가 되어버리면  버려졌다는 서글픔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간절함에 스스로를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나의 이중성에  나 스스로가 지쳐 떨어져 나가 버리고, 그렇게 난 스스로에게도 버림받곤 했었다.  나에게 버려진 내 영혼은 또 어딘가에서 정처 없이  자신이 기댈 곳을 찾으며 떠돌아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흐는 자신을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낙오자로 생각했지만 그 곁에는 누구보다 그를 사랑했던 영혼의 동반자 동생 테오가 있었고 그를 지지해줬던 탕기 영감님과 지누 아주머니, 그리고 그의 재능과 그림을 아꼈던 몇몇의 화가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로부터 잊힐 수도 있다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그를 잠식해버렸고 그는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다 결국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해버렸다.


고흐의 영혼은 이제 안식과 평화를 찾았을까

생전 그가 그토록 갈망했었던  관심과 사랑을,  그의 그림을 향한 인정과 찬사를 그곳에서 마음껏 누리며 그의 영혼이 더 이상  외로움에 눈물 흘리지 않고 편안하기를 기도한다.



길가에 핀 외로운 한송이의 꽃을,

시끌벅쩍한 운동장 한편에서

우두커니 홀로 서있는 어린아이를,

빌딩 숲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홀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 청년을,

행복한 웃음과 평안한 미소가 가득한 도심 속 공원에서

한쪽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노인을,

지나치지 말고 한 번씩을 들여다 봐주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 홀로 있는 모든 것들에게  자신의 곁을 조금씩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과 담담히 맞서고 있는 고고한 한송이의 하얀 아이리스 같은 존재에게도 누군가가 내어주는 따뜻한 곁은 그를 이 세상에 조금 더 존재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가끔 정처 없이 홀로 거닐고 있을 나의 영혼이 더 이상 뱡황하지않고 내 곁에서 편안히 머무르기를 바라며 오늘도 난 고흐의 영혼을, 고흐의 아이리스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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