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가의 꽃 Mar 12. 2021

설유화 같았던 그들

설유화

요즘 시즌에는 꽃시장 소재 집 (잎 소재 위주로 파는 곳) 근처만 가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장 저 멀리서 나무 가지에 눈송이가 방울방울 달린 설유화가 보이기 시작하면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가 실감이 나며 설유화를 쓸 생각에 괜스레 신이 난다.


설유화는 정식 명칭 가는잎조팝나무의  애칭 같은 이름이다. 3월 말쯤부터 국도변이나 도심 속 길가, 강변 둑 근처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꽃이 바로 이 설유화이다. 자칫 잘못 보면 공조팝나무와 설유화가 헷갈릴 수도 있지만  조팝나무의 꽃이 팝콘처럼 동글동글 핀다면 설유화 가지의 꽃은 줄기에 작은 눈꽃송이가 살짝 앉은 듯, 조팝나무의 꽃보다는 하늘하늘한 느낌을 자아낸다.  

수강생분들은 차 타고 지나가다  길가에 설유화가 보이면 내 생각이 난 다고 할 정도로 설유화를 자주 수업에 애용했었다.


플로리스트 입장에서 설유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에 설유화 한줄기가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몽환적이고 사랑스럽게 변모하는, 마법 같은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설유화가 나오는 시즌의  결혼식에 가보면 오직 설유화로만 꽃 장식을 한 예식장이 많을 정도로 존재만으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지어 어느 한 지인은 새하얀 눈꽃이 흩날리는 설유화 속 결혼식에 대한 로망 때문에 결혼은 꼭 설유화가 나오는 시즌에 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설유화는 동화 속 장면을 연상시키듯 신비하고 아름답다.

 

앞서 말했듯, 평소 꽃다발을 잡다가도, 화기에 꽃을 꽂다가도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애매한 느낌이 들 때, 설유화 가지가 짠 하고 들어가면 바로 분위기가 반전이 되며 처음부터 이 자리는 내 자리였어 라고 외치듯 모든 꽃들과 잘 어우러져 꽤 멋들어진 작품으로 완성된다.

 어떤 컬러, 어느 형태의 작품에서도 설유화는 불협화음 없이 가지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전체적인 발란스를 함께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고맙고 기특한 꽃이기도 하다.


마치 어색한 어느 모임에 등장만으로도 모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지만 자신 위주의  분위기로 끌고 가지 않는, 그래서 누구나 그가 나타나면 괜히 안도가 되는 사교성 좋고 심지어 혼자 있을 때는 오롯이 더 반짝 빛나는 그런 매력적인 사람 같다.


이제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약간의 사회화로 인해 집단 안에서의 나는 일종의 가면을 쓰고 애써 자연스럽게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삐걱거릴 때가 있다.

나는 가면을 썼다고 생각하지만  언뜻 튀어나오는 어색한 몸짓과 나의 표정을 상대방에게 들킬 때마다 자괴감에 늦게까지 잠 못 이룰 때가 많다.


그래서 설유화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주변을 이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구세주라도 만난 듯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살아오며 때때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맬 때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났었던 것 같다. 한껏 움츠러들어 한 발짝 내딛는 것도 어려워 저만치 먼 곳에서 종종거리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때 선뜻 나의 손을 끌어당겨준 얼굴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혼자서는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가장자리에서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어느새  빛이 비치는 세상의 중심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어느 집단에서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짓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그들을 한 번씩 떠올린다.  삐그덕 거리고 쭈뼛거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그런 나의 성격을 매력으로 봐주며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줬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다소 뻣뻣하고 정체될 수 있었던 내 세상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음을 느낀다.


마지막 설유화 한줄기가 미완성된 작품의 완성을 결정짓고 아름다움을 끌어올리듯, 인생의 굽이마다 내 앞에 설유화 한줄기처럼 나타나 줬었던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이 글로 조용히 전하며  내 인생의 설유화 같았던 그들에게 언젠가 나도 그들의 삶에 사뿐히 내려앉은 설유화 꽃송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 10화 외로운 한송이, 고흐의 아이리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