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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Dec 20. 2021

꽃들의 작은 일탈, 생화 염색

7년 전쯤, 남자아이의 유치원 졸업식 꽃다발로 파란색 장미 꽃다발을 주문받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염색한 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왜 꽃 본연의 아름다움을 저런 컬러풀한 색들로 덮으려고 하는 걸까 하는 안타까움과 무엇보다 보기에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아들이 좋아할 만한 꽃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내 취향은 잠시 뒤로 접어 두고 파란색 장미를 어떻게 하면 가장 멋있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포장지와 리본을 선택하는데 어떤 꽃다발보다 더 신중을 가했었다.

그리고 결과물은 꽤 괜찮았고 어머님은 그 이후로도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주었던 기분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꽃인생의 첫 염색 꽃, 파랑 장미 이후로 한번 정도 핑크 안개 꽃다발을 주문받은 적을 빼고는 난 염색 꽃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인가 시장에는 알록달록 염색 꽃이 아닌,  파스텔톤부터 빈티지한 컬러,  그러데이션이 된 투톤 컬러의 꽃 등 다양한 염색 꽃들이 등장했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하지만 선뜻 구입하지는 못하고 그 근처를 몇 번을 맴돌면서 일단은 눈에만 담아두었다.


꽃의 자연스러움,자연이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형태와 컬러를  동경했었고, 비록 나는  절화를 다룰지언정  꽃과 잎의 본래 타고난 자연스러움을 지키고 싶었다.

물론 야생화가 아닌 이상 우리가 사용하는 꽃 대부분이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재배된 꽃들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뭔가 염색 꽃은 나에게 또 다른 카테고리 안에 속해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모범생으로 쭉 학창 시절을 보내온 내가 비록 제도권 교육체계 안에서 아주 작은 방황은 해봤지만 그 안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처럼 나에게 꽃이란 것 또한 나 혼자 정한 어떤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들만 허용하고 그 외에 것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꽃을 하면서도 옛날의 그 범생이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미적 감각이라는 착각 아래 나만의 아집과 편견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해가 거듭되고 꽃을 하면 할수록, 어서 빨리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래, 이건 내 스타일, 저건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눈 채  나와 다른 것은 자꾸만 배척해내고 있었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 뒤에 내가 장인정신의 신념을 가지고 내 것을 고수할 수 있는 날들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 세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져야 하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야 할 공간을  내 안에 많이 남겨두어야 한다.



다양해져가고 있는 염색 꽃은 꽃의 새로운 또 다른 모습이자 트렌드이고, 이러한 작은 일탈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열흘 후면 나는 한국 나이로 40살이  된다.

여기까지 온 나에게 정말로 수고했다고

그리고 이제는 유연한 어른이 될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수 없이 고집도 피워보고 회피도 해보고 도망도 쳐봤다. 해봤기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 더 많았기에 그동안의 수많은 부침들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의 나는

덜 확고하고 덜 신념에 찬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것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아닌 것들은 대담하게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리고 작고 큰 일탈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조금은 늦은 2021년 끝자락에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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