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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Apr 07. 2022

나의 하루에 향기를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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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한 번씩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향들이 있다.

기억력이 꽤 좋다고 자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이벤트가 있던 순간들 혹은 슬프고 상처받았던 순간들은 날이 갈수록 생생해져만 가는 반면 그 외의 사소했던 순간들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몇년 전 어느 ,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샘플 화장품 뚜껑을 여는데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때  시절  공간 속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한듯한 기분을 느꼈다.  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었기에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진 시간들이었다.  20 초반,   정도 머물렀던 여행지에서 사용했었던 화장품의 향기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시절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 함께 다니던 곳곳의 풍경들,  서로 장난치며 깔깔거리고 투닥거리던 장면들, 마지막 헤어지면서 눈물을 훔치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었다.  만약  인생이  편의 영화라면  시절은 내가 가장 청춘다웠었고  들떴었고 설렜었던 장면으로 사용될 것이다.

희미해져갔던 시간들이 향기로 되살아나는 경험이었다.


어떤 시각적인 자료보다 향기가 지니는 힘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 할머니 집에서만 나던 특유의 향기, 어릴 적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 대학시절 내가 쓰던 바디로션의 향기,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했던 친구의 옷에서 나던 섬유유연제 향기, 좋아하던  매장에 가면 늘 나던 아로마 향기  등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향기들은  그때 그 시절의 나로, 우리로 데려가 준다. 이제는 맡을 수 없게 된 향도 있고 지금 맡으면 뭔가 그때 그 향과 다르게 느껴지는 향도 있지만 나는 그 향기의 기억으로 그 시간들을 추억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늘의 향기를 내 하루에 입힌다.

요즘은 요가원에서 나는 아로마 향기와 묵직한 비누향이 나는 향수에 빠져있다. 아침마다 내 공간에는 아로마 스프레이를, 내 손목에는 비누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만의 향기가 있다는 것은 가끔 우울한 기분에 침식되어있다가도  순간 내 곁에서 스치는 이 향기가 울적한 기분을 한결 낫게도 하며 안정을 시켜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 머무는  공간이, 나의 오늘이 시간이 지나면 이 향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오늘이 또는 예전의 어느 날이  그리워지면  그날의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며 그곳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일상 속  재미난 일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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