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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씩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향들이 있다.
기억력이 꽤 좋다고 자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이벤트가 있던 순간들 혹은 슬프고 상처받았던 순간들은 날이 갈수록 생생해져만 가는 반면 그 외의 사소했던 순간들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몇년 전 어느 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샘플 화장품 뚜껑을 여는데 순간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그 공간 속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한듯한 기분을 느꼈다. 십 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었기에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진 시간들이었다. 20대 초반, 두 달 정도 머물렀던 여행지에서 사용했었던 화장품의 향기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 함께 다니던 곳곳의 풍경들, 서로 장난치며 깔깔거리고 투닥거리던 장면들, 마지막 헤어지면서 눈물을 훔치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었다. 만약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시절은 내가 가장 청춘다웠었고 꽤 들떴었고 설렜었던 장면으로 사용될 것이다.
희미해져갔던 시간들이 향기로 되살아나는 경험이었다.
어떤 시각적인 자료보다 향기가 지니는 힘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 할머니 집에서만 나던 특유의 향기, 어릴 적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 대학시절 내가 쓰던 바디로션의 향기,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했던 친구의 옷에서 나던 섬유유연제 향기, 좋아하던 매장에 가면 늘 나던 아로마 향기 등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향기들은 그때 그 시절의 나로, 우리로 데려가 준다. 이제는 맡을 수 없게 된 향도 있고 지금 맡으면 뭔가 그때 그 향과 다르게 느껴지는 향도 있지만 나는 그 향기의 기억으로 그 시간들을 추억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늘의 향기를 내 하루에 입힌다.
요즘은 요가원에서 나는 아로마 향기와 묵직한 비누향이 나는 향수에 빠져있다. 아침마다 내 공간에는 아로마 스프레이를, 내 손목에는 비누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만의 향기가 있다는 것은 가끔 우울한 기분에 침식되어있다가도 순간 내 곁에서 스치는 이 향기가 울적한 기분을 한결 낫게도 하며 안정을 시켜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 머무는 공간이, 나의 오늘이 시간이 지나면 이 향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오늘이 또는 예전의 어느 날이 그리워지면 그날의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며 그곳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일상 속 재미난 일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