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내가 머무는 공간은 나의 정체성과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집을 비롯해 이동하는 시간을 함께하는 나의 차 안, 심지어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는 동네의 카페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은 나의 평범한 하루를 '나만의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 준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거실로 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오래된 원목 식탁이 있는 부엌의 한편을 좋아한다. 부엌 너머 거실을 비추는 창가의 햇빛을 등지고 식탁 앞에 앉아 하루는 일기를 쓰고 어느 하루는 그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그리고 라디오도 듣는다.
오래된 이 루틴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하고 단조롭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바로 '이 공간'에서 하는 것이기에 이는 나만 아는 기분 좋은 루틴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식탁 위 군데군데 보이는 얼룩이 아침 햇살에 비칠 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식탁 건너편 거울로 비치는 부엌 한 편의 매일 보는 이 공간이 매번 새롭게 다가오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이 공간을 종종 사진에 남겨 기록한다. 내 취향의 식탁과 그 위를 비추는 조명, 화려하거나 비싸지는 않지만 하나 둘 모아 온 각기 다른 모양의 컵과 접시 위에 담겨있는 커피와 빵, 그리고 좋아하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매일 아침 이 공간은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된다.
바쁜 일상 속에 매일 이 루틴을 지켜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을 이 공간에서 시작하는 날은 마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의 티저처럼 그날을 예고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들이 채워져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즐겨가는 카페의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공원의 풍경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일 년 중 꽤 많은 시간을 카페에 앉아 보낸다. 집 앞 스타벅스의 시끌벅적한 분주함 사이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가 훨씬 많지만 나 홀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찾게 되는 나만의 북카페가 있다.
나지막한 음악과 맛있는 커피 그리고 고소한 스콘 향, asmr 같은 우유 스팀기 소리와 함께 늘 수줍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사장님이 계신 조용한 동네의 작은 북카페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4계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큰 창 앞에 마주 앉아 그 계절의 옷을 입고 있는 공원의 모습을 감상한다.
괜히 속상한 날,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고 싶은 날, 날씨는 너무 좋은 데 갈 곳이 없는 날, 나는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창가 앞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라본다. 아무 날 훌쩍 홀로 가서 앉아 있다가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되는 카페가 하나쯤 있다는 것이 일상 속 큰 위로가 된다. 지금 이 글도 이 카페에 앉아 쓰고 있다. 브런치의 대부분의 글이 이 공간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다. 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만의 카페가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며 아이스라테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신다.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과도 같다. 그럴듯하고 비싼 물건과 있어 보이는 것들로 빡빡 히 채워져 있는 오늘날의 화려한 공간들 속에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소소한 공간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모험이다. 하지만 의의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도 있다. 또는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이 내 눈에만 발견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러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내 공간으로 데리고 온다면, 어릴 적 소중한 것들을 숨겨놓았던 보물 상자와 조우하듯 어느덧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 보물과도 같은 공간으로 변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