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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Mar 11. 2022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 찾기

나에게 있어 내가 머무는 공간은 나의 정체성과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집을 비롯해  이동하는 시간을 함께하는 나의 차 안, 심지어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는 동네의 카페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은 나의 평범한 하루를 '나만의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 준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거실로 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오래된 원목 식탁이 있는 부엌의 한편을 좋아한다.  부엌 너머 거실을 비추는 창가의 햇빛을 등지고 식탁 앞에 앉아 하루는 일기를 쓰고 어느 하루는 그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그리고 라디오도 듣는다.

오래된 이 루틴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하고 단조롭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바로 '이 공간'에서 하는 것이기에 이는 나만 아는 기분 좋은 루틴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식탁 위 군데군데 보이는 얼룩이 아침 햇살에 비칠 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식탁 건너편 거울로 비치는 부엌 한 편의 매일 보는 이 공간이 매번 새롭게 다가오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이 공간을 종종 사진에 남겨 기록한다. 내 취향의 식탁과 그 위를 비추는 조명,  화려하거나 비싸지는 않지만 하나 둘 모아 온 각기 다른 모양의 컵과 접시 위에 담겨있는 커피와 빵, 그리고 좋아하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매일 아침 이 공간은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된다.

바쁜 일상 속에 매일 이 루틴을 지켜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을 이 공간에서 시작하는 날은 마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의 티저처럼  그날을 예고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들이 채워져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즐겨가는 카페의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공원의 풍경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일 년 중 꽤 많은 시간을 카페에 앉아 보낸다. 집 앞 스타벅스의 시끌벅적한 분주함 사이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가 훨씬 많지만 나 홀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찾게 되는 나만의 북카페가 있다.

나지막한 음악과 맛있는 커피 그리고 고소한 스콘 향, asmr 같은 우유 스팀기 소리와 함께 늘 수줍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사장님이 계신 조용한 동네의 작은 북카페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4계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큰 창 앞에 마주 앉아 그 계절의 옷을 입고 있는 공원의 모습을 감상한다.

괜히 속상한 날,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고 싶은 날, 날씨는 너무 좋은 데 갈 곳이 없는 날, 나는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창가 앞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라본다.   아무 날 훌쩍 홀로 가서 앉아 있다가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되는 카페가 하나쯤 있다는 것이 일상 속 큰 위로가 된다.  지금 이 글도 이 카페에 앉아 쓰고 있다. 브런치의 대부분의 글이 이 공간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다. 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만의 카페가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며 아이스라테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신다.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과도 같다.  그럴듯하고 비싼  물건과 있어 보이는 것들로 빡빡  채워져 있는 오늘날의 화려한 공간들 속에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소소한 공간을 찾는 것은  어려운 모험이다. 하지만 의의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있다. 또는 어느  아주 우연히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이  눈에만 발견되는 날이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러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내 공간으로 데리고 온다면,  어릴 적 소중한 것들을 숨겨놓았던 보물 상자와 조우하듯  어느덧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 보물과도 같은 공간으로 변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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